자구책 미흡하지만 요금 인상 더 미룰 수 없다
2023.05.12 14:57
수정 : 2023.05.12 14:5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한국전력은 12일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 빌딩 등 자산 매각, 임금 인상분 반납 등으로 25조 7000억 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자구책을 발표했다. 가스공사도 임금과 성과급 반납 등으로 15조 4000억 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요금 인상을 앞두고 있는 한전과 가스공사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요구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뼈를 깎는' 고강도 자구책이었다. 이에 부응하고자 두 공기업이 그동안 임직원들의 희생을 포함한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노력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자구책으로 국민 눈높이를 충분히 맞출 수는 없다고 본다. 임금 반납이나 동결을 해도 한전 전체 임직원의 15%, 가스공사는 34% 정도가 억대 연봉자다. 평균 연봉으로 따지면 한전은 8450여만 원, 가스공사는 9300여만 원이다.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두 공기업은 임금을 매년 올렸고 직원도 더 뽑았다. 국민 일각의 시선에서는 인상분 반납이 아니라 연봉 삭감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당정은 발표된 자구책을 검토한 뒤 받아들일 만하다고 판단되면 다음 주 중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는 자구책이 다소 기대에 미치지 않더라도 요금 인상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본다. 한전의 경우 2021년부터 2022년까지 38조 원의 적자를 내 자본잠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재무 상태가 나빠졌다. 가스공사도 올해 1·4분기에 14조 2919억 원에 이르렀다. 요금을 올리지 않는다면 적자는 더욱 심화돼 조직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이미 올 들어 한차례 전기 요금 인상으로 가계는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다시 요금을 올린다면 특히 서민들과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더 커질 것이다. 그래도 국가 에너지 공급 체계의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십시일반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본다.
이렇게 된 원인을 따지자면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전 정권의 탈원전 정책 탓이 크다고 할 것이다. 외생 변수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값싼 원자력을 외면하고 LNG 등 비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한 전 정권의 정책 실패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 정권은 그러면서도 포퓰리즘에 빠져 요금 인상을 계속 미룬 끝에 부담을 현 정부에게 떠넘겼다.
이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생산원가보다 낮지 않은 적정 수준으로 전기와 가스 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탈원전 폐기도 서둘러야 하고 몇 푼이라도 싼 가스 공급선을 찾아 도입 원가를 낮추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기름과 가스가 나지 않는 나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해야 한다.
공공요금 인상은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언제까지 폭탄 돌리기를 하듯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계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국민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책은 절약으로 청구서에 적힌 요금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밖에 없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책은 결코 흡족하지 않다. 국민의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낸 요금이라고 생각하면 임금 인상은 최대한 억제하고 자금을 허투루 쓰는 일은 더욱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