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자, 치매처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재활·예방교육 예산 절실
2023.05.16 13:14
수정 : 2023.05.16 13:1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치매환자와 가족들의 부담을 책임지는 '치매국가책임제'처럼 마약 중독자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마약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마약 사범 검거·처벌뿐 아니라 중독자 재활 치료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마약 중독자 아들을 둔 A씨는 이날 국민의힘이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에서 진행한 '청소년 마약중독 대책 마련 간담회'에서 "(마약 사범을) 잡아들이고 처벌하고 풀어주는 것을 반복하면 전과 수만 쌓인다"며 "중독자를 처벌하고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범죄를 단절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회복과 치료, 재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민생 특위 '민생119'는 이날 청소년 마약 범죄 증가에 대한 전국민적 경각심을 환기시키고 마약 중독자 치료 및 재활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간담회를 개최했다.
중독자 가족 "치매환자 가족처럼 긴장과 초조의 연속"
회복자가 중독자 돕는 시스템으로 가야
회복자가 중독자 돕는 시스템으로 가야
A씨는 마약 중독자 가족의 고통을 치매 환자를 둔 가족에 비유하며 "중독자가 환각 상태에 빠지게 되면 자해를 할 수도 있고,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으며 제3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런 중독자를 가족이 아니면 누가 지키겠냐"며 "그러다 보면 가족의 생활 패턴이 깨지고, 중독 기간이 길어지면 가족 간 불화가 생기고 이탈자가 생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A씨는 자신의 아내가 우울증에 빠진 경험을 공유하며 "중독자 가족을 보는 시선이 냉담하고 비판적이다. 중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숨기기 급급하고 어디 나가서 사고를 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A씨는 "청소년들이 마약에 희생돼서야 되겠냐. 그들을 치료하고 재활해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길"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와 정부에 "치매국가책임제도처럼 마약 중독자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 줄 수 없겠냐. 가족만의 힘으로 근절시키기가 정말 어렵다"고 했다.
치매를 개별 가정에 맡기는 것이 아닌 국가가 돌봄 차원에서 책임지는 것처럼 마약 중독자에 대해서도 국가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관리하자는 주장이다.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중독 재활을 거쳐 회복상담사의 길을 걷고 있는 B씨도 "몇몇 의료진들도 중독은 회복이 안 된다고 하는데 관리를 하면 된다"며 "정부가 마약퇴운동본부에 관심을 갖고 회복자가 중독자를 돕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마약에 빠져 살았지만 현재 회복자 상담 교육 과정을 밟고 있는 C씨는 "마약 중독자들은 출소 이후 통장 하나도 못 만들 정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끊으려고 마음 먹어도 잘 안 된다"며 "저도 이렇게 (중독에 빠져) 살다 죽을 줄 알았지만 여기(마약퇴치운동본부)에 와서 정상인들 속에서 1년 넘게 생활하다 보니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C씨는 "예산 부족 문제가 가장 크다"며 "마약 중독치료 국가 지정병원조차 예산 부족으로 상담사들이 개인 사비로 중독자를 돕고 있고, 결국 병원 문을 닫는다. 초기에만 도움을 주겠다고 하고 나중에는 관심이 사그라드는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학생 3~4%만 예방교육..예산 확보 필요"
감담회에선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이 중요한데도 현재 그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김필여 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이사장은 "작년의 경우 마약 예방 교육을 전체 학생 수의 3~4%밖에 못했다"며 "본부는 전문강사 양성에 힘쓰겠다. 국가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예산 확보에도 신경써달라"고 했다.
B씨는 또 10대 마약사범이 급증한 데 대해 "(지난해 적발된 청소년 마약사범이) 400여명이라고 하는데 검거된 수만 그렇지, 실제 마약을 하는 청소년들은 최소 10배 이상일 것"이라며 "마약에 손을 안 댄 사람은 마약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금연 교육을 하듯이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與 "예방부터 복귀까지 통합 시스템 만들어야"
이에 김기현 대표는 "범정부적으로 사전예방에서부터 체포, 단속, 치유, 재활, 복귀까지 이뤄지도록 통합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마약청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한 "교육부에 마약 예방 내용을 학교 보조 교재가 아닌 주교재에 넣어 학생들 수업시간에 가르쳐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마약 문제는 중독자 본인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는 데 모두 공감하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은퇴한 선생님들이나 교수님이 청소년 상담사나 멘토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제도화할 수 있는지 살피겠다"고 했다.
아울러 "마약 중독은 죄가 아니라 병이기 때문에 병의 관점에서 환자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여러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