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오마카세' vs '400원 도시락' 같이 먹는 MZ 고찰: 1화

      2023.05.24 05:00   수정 : 2023.05.24 09:2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다른 나라의 생활물가를 가늠할 때 참고하는 지표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그 나라의 최저 시급과 택시 기본요금이다. 글로벌 하게 통하는 '빅맥지수'나 '1인당 GDP' 등의 수치도 있지만 경험적으로 앞선 지표 2가지가 더 현실을 잘 반영한다.



빅맥은 대부분 지역에서 팔긴 하지만 팔지 않는 국가도 있고, 스타벅스 커피만 봐도 전세계적으로 가격이 비슷해 개발도상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비싸게 느껴진다. 1인당 GDP도 사우디아라비아나 브루나이 같이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의 경우 평균적인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는 부적합하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택시 기사에게 그 나라의 최저시급을 물어보면 대략적인 그 나라의 생활물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년간 韓 최저시급 3.4배...日은 제자리

대학교 1학년이던 2004년 한국의 법정 최저시급은 2840원, 택시 기본요금은 1600원이었다. 2004년 당시 일본의 최저시급은 711엔(약 7000원), 택시 기본요금은 660엔(6600원)이었다.
20년이 지난 올해 한국의 최저시급은 9620원, 택시 기본요금은 4800원이다. 현재 일본은 최저시급이 853엔(오키나와)~1072엔(도쿄), 택시 기본요금은 500엔으로 오히려 20년전보다 낮아졌다.

20년전 일본의 최저시급은 한국보다 약 2.3배 높았고 택시요금도 4배 가량 높았다. 2023년 현재 한국과 일본의 최저시급은 도쿄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한국이 더 높은 편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역마다 최저 시급이 다르다.) 20년 동안 일본의 택시 기본 요금은 오히려 더 내렸지만(거리당 요금 미고려), 한국의 택시요금은 3배 올랐다.

2004년 한국의 분식집에서는 한 줄 1000원 김밥이 일반적이었고, 당시에 일본의 김밥천국 격인 요시노야 규동(소고기 덮밥)은 350엔 정도였다. 한국의 김밥은 현재 4000원~5000원으로 올랐고 일본의 규동은 가격이 그대로다.

수십년째 경제가 정체 중인 일본은 지난 20년간 물가 인상이란 개념이 없었다. 최근 장기간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기간 시중에 돈이 풀리자 100엔 초밥이 110엔 초밥으로 올랐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초밥의 가격이 10엔(100원) 오른 것을 두고 '일본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반면 한국은 지난 20년 동안 최저 시급은 대략 3.4배, 택시 기본요금은 3배 올랐다. 택시비가 오른만큼 최저시급이 올랐으니 체감 물가는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최저시급과 물가는 천천히 오른다. 하지만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은 더 빨리 오른다. 최저시급과 물가가 비례하게 올라도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이 없는 젊은 세대는 더 가난해지는 구조다.

최근의 현대 화폐 이론(MMT)은 돈을 끊임 없이 인쇄하며 빚을 늘리고, 금리를 낮춰 빚 부담을 줄이는 형태로 규모를 키워간다. 그 중심에는 최대의 수출품이 '달러'라는 미국이 있다. 지난 수십년, 백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금과 비교한 달러의 가격은 매년 7~9% 정도 가격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바꿔 말하면 돈(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은 매년 그 만큼 가난해 진다는 의미다. 반면 금과 같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은 그 만큼 더 부자가 된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하지만 돈의 속성상 돈은 더 많은 돈을 부르고, 가난은 더 큰 가난을 부른다. 격차는 더 커진다.


숨만 쉬고 월급을 모아서 집을 사는데 몇 년이 걸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있다.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이다. 주택가격을 가구의 연 소득으로 나눠 구한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08년 수도권의 PIR은 6.9년 이었다. 2021년은 PIR이 10.1년으로 3.2년 늘었다. 최저시급은 물가만큼 올라 인상효과가 없는데 집값은 3.2년 만큼 더 비싸진 것이다. 가장 많은 직장이 있는 서울을 기준으로 2021년의 PIR은 19.0(KB부동산 기준)년이다.

30만원 오마카세 vs 400원 도시락 '양극화'

현대의 평균적인 젊은 청년들이 서울에 아파트를 사려면 숨만 쉬고 19년치의 월급을 전부 모아야 한다.

핸드폰 요금을 내고, 지하철을 타고, 국밥을 사먹으며 저축하면 이 기간은 30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작금의 청년들은 내집 마련과 내집 마련을 통한 자산 형성을 포기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지금 청년들의 아버지 세대가 6~7년 정도 월급을 모아 집을 사면, 그 집의 가격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과거의 한국 사회와 전혀 다른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요즘 청년들의 현실은 팍팍하지만 잠자는 8시간 정도를 제외한 16시간은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스마트폰 속 SNS에는 가장 비싸고, 멋지고, 행복한 순간들만 올라온다. 현실과 SNS상의 괴리에서 몇몇 청년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30만원짜리 초밥 오마카세에 가서 한 끼를 먹고 사진을 남긴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각종 포인트와 제휴사 할인을 받아 정가 4000원인 편의점 도시락을 400원에 사먹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의 양극화는 부자들은 백화점 VIP 명품관에서 쇼핑을 하고 보통 사람들은 유니클로 같은 SPA브랜드에서 옷을 사는 '계층간 양극화'였다. 현재는 양극화의 형태가 다양화 되면서 동일한 소득을 지닌 사람이라도 '소비의 양극화'를 추구하는 모양새다.
최저시급을 받고 살더라도 컵라면에 편의점 도시락으로 언제나 끼니를 때우는 대신 아끼고 아껴서 한 끼 정도는 30만원 초밥 오마카세를 먹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행태는 칭찬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 종류의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변화된 생활 태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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