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 갔다 마약상 된 청년… "내 삶 찾는 데 7년 걸렸다"
2023.05.23 18:06
수정 : 2023.05.23 18:50기사원문
<1> 어느 마약 중독자의 고백
마약에 빠진 중독자들이 마약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자신이 '중독 상태'임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순간의 호기심에 마약에 빠진 이들은 자신이 중독됐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이들은 마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훨씬 더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하다.
■워홀 청년, 마약상이 되다
A씨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세가 되자마자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갔다가 마약을 처음 접하게 됐다. 청년들이 모여서 하는 파티에는 항상 대마초나 MDMA가 있었다. MDMA는 '엑스터시'로도 불린다. 파티에 참석해 그들과 어울리던 A씨는 마약 권유를 받았고, 그렇게 삼킨 한 알의 엑스터시가 삶을 바꿔놓았다.
시작이 반이다. 다른 마약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A씨는 "마약 중독자들이 처음부터 강한 마약에 도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면서 "제 경우는 엑스터시나 대마초로 마약을 처음 접하고, 점차 강한 쾌락을 찾다 결국 필로폰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A씨가 자신의 혈관에 필로폰 주사를 꽂기까지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약사범 사이에선 코카인보다 필로폰을 접하기 쉽다고 한다. 코카인은 너무 비싸고, 필로폰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강한 쾌락을 준다고 한다. 강한 쾌락을 찾아 헤매는 동안 재산도 점점 빠져나갔다. 버는 돈을 모두 마약에 쓰게 된 A씨는 마약으로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마약 하는 현지 친구들에게 물건을 전달해주고, 물건을 떼다가 자신의 몫을 남겨두고 나머지를 팔았다. 서서히 우울함이 찾아오고,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그때는 그것이 마약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년 뒤 증상이 점차 심해지자 A씨는 한국행을 택했다.
■'구글'에 뚫린 마약청정국
A씨는 한국에서 마약을 끊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구글링(구글 검색)'이 다시 마약에 빠지게 만들었다. A씨는 마약 키워드로 검색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판매되는 마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A씨는 "그때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던데, 온라인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구해도 되나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A씨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마약상'의 길로 들어선다. 처음 마약을 구하게 된 이후로 1년 넘게 마약을 판매하다가, 유통사범으로 구속 기소됐다. 최종 판결은 징역형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A씨는 다시 세상 밖에 나오게 된다. 하지만 잠시 구속된 기간이 A씨를 지옥으로 이끌었다. A씨는 "나는 구속기소된 초범이었지만 구치소에 있는 동안 전국의 마약 유통·판매 인맥을 알게 돼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갔다"고 고백했다. 출소 후 A씨는 직장인으로는 엄두도 못 낼 수입을 올렸다. 그 돈을 고스란히 본인이 사용할 마약 구매에 탕진했다. 중독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A씨는 "마약을 해도 쾌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가 됐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면서 "우울증과 정서불안이 심해지고 틱 증상과 함께 코에 원인 모를 혹이 나고 갑상선 종양까지 생겼다"고 전했다.
■다르크 입·퇴소 반복하며 가까스로 치유
A씨는 마약중독을 두고 '고립의 병'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씨는 당시 연인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마약을 권유했다. 마약에 빠지게 된 주변인들은 점차 망가졌고, 처음 마약을 권유했던 A씨를 증오했다. A씨는 모든 인간관계를 잃었다. 다만 곁에서 아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던 부모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스물다섯살, 단약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경기도 다르크(DARC, 마약·약물중독치유 재활센터)라는 민간 마약 재활치료센터가 있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중독자들이 입소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 정도 공동체 생활을 한다. 마약에서 절실하게 벗어나고 싶던 A씨도 이곳을 찾았다.
처음의 금단증상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처음 입소 당시 혼자 3인분의 양을 먹으며 폭식을 하거나, 2주 동안 하루 한 끼만 먹고 잠을 잔 적도 있다. DARC를 뛰쳐나가고 싶던 순간도 많았다. 실제로 A씨는 DARC 입소 중 2번을 퇴소한 적이 있다. 하지만 2번 다 일주일 이내에 돌아왔다. 바깥에서는 약을 끊을 자신도 없었고, 다시 망가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A씨는 DARC에 들어가 인생 처음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해나가며 자기관리를 시작했다. A씨는 그제야 본인이 심각한 중독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양한 중독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모여 서로의 단약을 응원했다. A씨는 입소 생활을 "약을 끊어가는 다른 사람을 보며 '희망'을 배웠다"고 말했다. A씨는 마약을 끊은 이후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으로 너무 쉽게 구해지는 마약
지난 2021년 A씨는 모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입소 생활을 하며 온라인 강의를 듣는 대학생이 된 것. A씨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을 돕는 중독재활 전문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1월 A씨는 DARC 입소 생활을 마치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 대학교 2학년 과정을 진행 중이고,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편입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아직 지속되는 부작용에 꾸준히 병원을 찾는다. 마약 때문에 생긴 정서불안과 틱 증상이 없어지지 않았다. A씨는 "마약은 단순 호기심으로 하기에는 너무 대가가 크다"며 "불나방처럼 약을 쫓다가 자유의 대가를 치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어 A씨는 "내 삶을 찾는 데 7년이 걸렸다"며 "이제야 삶이 조금 재밌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한편 A씨는 마약상 및 단약 경험을 토대로 마약 온라인 수사 강화를 하는 한편 중독자 치료·재활을 좀 더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직도 온라인, 특히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너무 쉽게 구한다"며 "텔레그램 루트가 막히면 대부분 마약상들은 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치료·재활이 없다면 지금까지 마약에 손댄 사람들은 모두 악순환의 굴레에 들어갈 것"이라며 "지금 유입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치료·재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