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들이 신났어요” 봄밤에 흩날린 눈보라 ‘스노우쇼’
2023.05.24 14:57
수정 : 2023.05.24 21:03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명불허전. 8년 만에 내한한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는 소문대로 환상적이었다. 공연의 마지막이자 백미로 손꼽히는 눈보라쇼는 너무 일찍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종이 눈을 던지며 환호했고, 공연이 끝난 뒤 시작된 공놀이에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1993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스노우쇼’는 지난 30여 년간 전 세계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스테디셀러 공연이다.
‘스노우쇼’는 찰리 채플린, 마르셀 마루소와 함께 전설적인 광대로 손꼽히는 슬라바 폴루닌의 작품이다. 8명의 광대들은 아무런 대사 없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짧은 에피소드들을 재미있는 소품과 음악, 조명 등을 통해 펼쳐보인다.
앞서 폴루닌은 LG아트센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쇼의 많은 것들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는 겨울이면 눈이 5미터 이상 올 정도로 추운 마을에서 자랐다. 그는 “어릴 적에는 눈이 무섭고 싫었지만 나중에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며 “‘스노우쇼’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주제와 아이템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폴루니의 말처럼 ‘스노우쇼’는 산골 소년의 어릴 적 낭만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순간을 통해 관객의 동심을 자극한다. 기쁨과 슬픔,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도 전달한다. 여기에 무대 밖을 불쑥 튀어나와 관객에게 장난을 걸거나 호응을 유도하는 광대들의 광대 짓이 관객을 공연의 일부로 만든다. 공연장은 어느새 놀이의 공간이 된다.
마냥 밝고 유쾌한 에피소드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스노우쇼’는 으스스한 면도 많다. 불이 꺼지면 칠흑처럼 어둠이 내려앉는데 마치 겨울밤 산골마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잠시 후 작은 조명이 켜지면 홀로 선 광대가 울고 있다. 악몽이라도 꾸다 깨어난 걸까?
그렇게 시작을 여는 ‘스노우쇼’는 아이들의 모험과 인생의 다양한 순간들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로 여러 시공간을 오간다. 침대는 드넓은 바다로 모험을 떠난 배가 됐다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유령이 날아다니는 판타지의 공간으로 변한다.
객석은 광대들의 놀이터가 됐다가 나무가 우거진 숲속이 된다. 무대서 뻗어나온 거미줄로 관객은 애벌레와 같은 신세가 된다. 거미줄은 1층 객석을 완전히 새하얗게 뒤덮는다.
마지막 눈이 오는 기차역에서 이별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광대의 퍼포먼스는 마임의 매력을 전달하며 아련한 슬픔을 자아낸다.
4월 30일 대전예술의전당(4월 30일~5월 1일)에서 시작된 공연은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5월 4일~6일)과 LG아트센터 서울(5월 10일~21일)을 거쳐 대구 수성아트피아(5월 24일~5월 27일), 울산 현대예술관(5월 31일~6월 3일)로 이어진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