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경찰조사 1시간뒤 연인 살해…30대 男 구속(종합)
2023.05.28 21:05
수정 : 2023.05.28 21:05기사원문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이소진 판사는 이날 오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모씨(33)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연 뒤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지난 26일 오전 7시 17분께 서울 금천구 시흥동 한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여성 A씨(47)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자신을 신고한 데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며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전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혐의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이날 오후 2시 2분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남부지법으로 호송되면서 "정말 죄송하다"며 "평생 속죄하고 살겠다"고 했다.
교제폭력에서 보복살인까지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약 1년간 피해자와 연인 사이로 지내며 서울 금천구 소재 피해자 집에서 주로 생활했다. 하지만 지난 21일 피해자가 김씨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이후 4일 정도 김씨는 피해자 집 근처 PC방 등을 전전하며 피해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26일 새벽 김씨는 피해자를 찾아와 재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경찰에 '김씨가 찾아와 TV를 부수고, 팔을 잡아당겼다'며 신고했다. 신고가 접수는 같은 날 오전 5시 37분께이었다. 출동한 경찰은 김씨를 임의동행했으나 오전 6시 11분께 귀가 조치했다.
김씨는 조사를 마치고 가면서 경찰에게 자신의 주민등록상 주거지인 파주로 향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에게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김씨는 거절했다. 이후 경찰은 김씨와 통화했는데, 당시 김씨는 파주로 향하는 택시 안이라고 속였다.
실제 김씨가 향한 곳은 전 연인인 피해자 A씨와 자주 방문했던 PC방이었다. 그곳 주차장에서 A씨의 차량이 주차돼있는 것을 확인한 김씨는 그가 조사를 마치는 대로 이곳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김씨는 A씨의 집에서 흉기를 가지고 나와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이후 경찰 조사를 마친고 자신의 차량으로 걸어오던 A씨를 김씨는 7시 17분께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A씨가 조사를 마치고 나온 뒤 불과 1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목격자는 있었다. 범행 직후 김씨는 현장을 지나던 시민 2명으로부터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씨는 '여자친구가 임산부다' '여자친구가 다쳐서 병원에 데려가는 거다' 등으로 둘러댄 뒤 아직 숨이 붙어있던 A씨를 차량에 싣고 차를 몰아 주차장을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무서운 생각이 들어 A씨의 치료를 위해 인근 병원으로 이동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해당 병원에서 불만족스러웠던 경험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고도 했다. 다른 병원에 다다랐지만, A씨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판단해 자신의 주거지인 파주로 차를 돌렸다고 한다. 김씨는 파주를 배회하다 살해 이후 8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3시 25분께 경기 파주시에서 한 야산의 공터에서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온 경찰에게 체포됐다.
'스토킹 아니다'...경찰 소극대응?
데이트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이후 살인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안일한 인식과 부실한 제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A씨의 폭행 신고로 김씨를 23분간 조사하고도 피해자에 대해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보복 살인의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관련해 경찰이 '폭행이 경미했고,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단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연인 간 범죄행위에선 현행법상 적절한 피해자 보호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스토킹 범죄가 성립되려면 가해자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피해자 주거에 침입해 물건을 훼손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김씨는 지난 21일 A씨가 헤어지자고 하자 A씨 집 근처 PC방 등을 전전하다 26일 새벽 A씨를 찾아가 말다툼을 벌였다. A씨는 김씨가 TV를 부수고 팔을 잡아당겼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를 스토킹 범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씨가 21일 이별 통보를 받은 뒤 25일까지 A씨에게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 않았고, 김씨가 TV를 부쉈다는 신고도 사실이 아니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인 사이에 발생한 폭력행위 등 범죄에 대해서도 스토킹이나 가정폭력처럼 피해자 보호조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coddy@fnnews.com 예병정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