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마약에 택배까지...다양해진 마약 유통경로
2023.06.01 16:20
수정 : 2023.06.01 17:2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부산=김동규기자】 5월 30일 오후 1시. 승용차 1대가 부산의 한 주택가 골목에 멈춰섰다. 차량 조수석에 앉은 한 남자는 빌라에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스마트폰 앨범에 저장된 용의자 사진과 인상착의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10여시간 잠복 근무 끝에 검거
"저 친구 같은데요?"
저녁 11시. 운전석에 탄 동료가 키 175cm쯤 되는 한 사내를 가리켰다. 류 경감이 이끄는 체포조는 조용히 A씨에게 다가가 말을 건 후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했다. A씨는 이른바 '엑스터시'로 불리는 합성마약(MDMA)를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이미 수사중인 마약사범을 통해 받은 첩보다.
류 경감은 "마약 사범들은 자신의 형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같이 투약한 공법이나 마약 판매책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렇게 첩보를 받아 수사하면 쉬울 것 같지만 실제 체포과정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위험도가 커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엑스터시 같은 마약은 주로 클럽에서 많이 퍼진다. 필로폰 같은 이른바 '하드 드럭'에 비해 가격이 싸기 때문에 투약자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류 경감은 "필로폰에 비해 강도가 낮은 마약들이 클럽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면서 "이런 가벼운 마약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 나중에 더 강도 높은 경험을 원하게 되고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인없는 '마약택배', 해외 총책까지 검거
류 경감은 지난 3월 마약사범 69명을 체포한 이른바 '하와이 마약 사건'에서 공을 세웠다. 택배 상자에 든 마약 유통 경로를 집요하게 추적해 해외 총책을 잡아들인 케이스다.
2021년 12월, 한 주민이 "우리 집으로 온 정체불명 소포에 마약이 들어있다"고 신고했다. 마약 수거책이 미쳐 가로채지 못해 생긴 사건이다.
류 경감은 "보통 해외에서 국내로 마약이 들어올 때 마약수거책이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과 연고가 없는 불특정한 가정집을 수신지로 기재한다"며 "택배가 도착한다는 알림 메시지를 우체부로부터 받으면 마약수거책은 수신지에서 대기하다가 우편물을 거둬가곤 하는데, 이번 사건에선 수거책이 우편물을 집 주인보다 먼저 거둬간 것을 실패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마약우편물이 국내에 들어온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근처 사설·방법용 폐쇄회로(CC)TV는 시간이 지나 당시 영상이 지워져 있었다.
류 경감은 택배상자에 수사를 집중했다. 유전자(DNA)검사와 혈흔 검사 등을 온갖 과학수사기법을 동원해 과자봉지 4~5개가 들어갈 크기의 택배 상자를 쥐 잡듯이 뒤졌다. 국립과학수사대를 통해 어떠한 증거를 찾지 못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 전문가에게 택배 상자에 대한 감식을 맡기기까지 했다. 이같은 끈기 덕에 해외총책의 신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국내외 수사기관에 신분 조회를 한 결과 지난해 5월 해외총책 한모씨를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다.
류 경감은 일단 한씨의 여권을 무효화하고 지난해 11월 한씨의 부모에게 찾아가 입국하도록 설득했다. 수사에 협조토록 해 형량을 조금이라도 낮출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 1월 한씨의 신병을 인천국제공항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였다.
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 이어 미국에서도 들어와
류 경감은 국내 마약 유통경로가 다양해지고 있어 정부의 강력한 수사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들어오는 마약 유입 경로는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위주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하와이에서 돈 마약 택배까지 발견되는 등 불법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마약은 항공편 뿐 아니라 배편 등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면서 감시망을 뚫기도 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류 경감은 "택배 상자 속에 들어오는 마약은 주로 초콜릿, 캔디, 커피, 고추장 등으로 포장돼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마약은 저가에 제조해 고가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판매책과 유통상들의 머리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류 경감은 "비록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때에 따라 주말도 반납해야 하는 불규칙한 생활의 연속이므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면서 "하지만 마약 피해가 내 가족에게도 미칠 수 있으므로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