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먹고 자라는 부실채권에 'NPL 소화' 배드뱅크 설치법 탄력받나

      2023.06.06 15:20   수정 : 2023.06.06 15:2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올해 부실채권(NPL)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NPL을 사들이고 처리하는 구조조정 기관인 '배드뱅크 설치'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해 지고 있다. 원내 1당 더불어민주당이 부실자산·채권 정리를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내 '안정도약기금'을 두는 배드뱅크 설치법안을 발의한 가운데 금융당국과 업계에서도 취지에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일단 시중은행들은 자동으로 부실채권을 매각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는 만큼 저축은행, 지방은행 중심으로 한 배드뱅크 우선적으로 설치하는 단계적 접근 방법도 거론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총여신에서 3개월 이상 연체돼 상환이 어려운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고정이하여신비율)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30일 발표한 올해 3월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0.41%로 전분기 대비 0.01%p 늘었다.
1·4분기에만 3000억원이 늘어 총 10조 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저축은행권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4분기 5.36%로 전년동기대비 2.19%p 증가했다.

선행지표 격인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어 부실채권 비율은 올해 연말까지 계속 상승할 전망이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국내은행 가계대출 리스크 예측' 보고서를 통해 올해 연말까지 가계대출 부실채권 비율이 0.33%으로 지난해말(0.18%)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의 상환여력이 약해져 가계대출 부실채권만 3조원으로 급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올해 9월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끝나면서 부실채권 비율이 크게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이 코로나19로 상환을 유예한 대출잔액이 1조 4313억원에 달했다. 만기를 연장해준 대출잔액은 36조 1845억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 상황실장 홍성국 의원은 지난 3월 당론 성격의 '배드뱅크 설치법'을 대표발의했다. 가계부채와 한계기업,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잠재부실이 현실화될 위험이 있는 만큼 부실자산·채권을 안정적으로 인수·정리하고 채무를 조정하는 배드뱅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캠코 내 안정도약기금을 설치해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부실자산과 채권, 부실징후기업 등이 갖고 있는 자산을 인수·정리하는 게 핵심이다. 기금 재원은 금융회사와 정부 출연금, 공사 전입금, 안정도약기금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한국은행 차입금 등으로 충당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홍 의원은 경제 위기마다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던 배드뱅크를 상설화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배드뱅크의 시초인 캠코와 부실채권정리기금이 생겼고, 2003년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됐을 때는 가계 부실대출을 정리하기 위한 한마음금융 등 배드뱅크가 설립됐었다. 2009년에는 시중은행 중심으로 민간 배드뱅크 유암코가 설립됐고,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 자본금 약 7000억원 규모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한 바 있다.

불황을 먹고 자라는 부실채권 특성상 앞으로도 규모가 늘어날 수 있는 데다, 금융회사가 분기말이나 연말 건전성 지표 관리를 위해 부실채권을 대거 처리하려 할 경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배드뱅크 설치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해 4월 소상공인진흥재단, 정부, 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배드뱅크 설립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에서는 법안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당장의 부실채권 시장이 잘 돌아가게 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캠코가 지금도 배드뱅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서 역할을 확대할지 여부는 상황을 봐야하는 것"이라며 "제도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법적 근거 없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집행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당국 관계자도 "부동산 PF 대출은 대주단 협약과 관련 기금 조성으로, 개인사업자대출과 관련 부실채권은 새출발기금에서 소화하고 있다"며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배드뱅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연체율이 오르고는 있지만 디레버리징(부채 축소)과 통화긴축 기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배드뱅크 설치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당국 관계자는 "2금융권 위주로 연체율이 급상승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배드뱅크 이야기가 나올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야당에서는 정무위원회 논의를 서둘러 미래의 부실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홍 의원은 통화에서 "부동산 PF 대주단 협약이나 대출 부실 관리를 시장에 맡기고 구조조정을 하라고 하는 건 한계가 있다"라며 "향후 1년을 내다보면 배드뱅크 필요성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에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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