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구 "4시44분에 걸려온 마동석 선배 전화, 거짓말 같았죠"(종합)
2023.06.13 06:01
수정 : 2023.06.13 06:01기사원문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야 동구야."
영화 '범죄도시3'에서 주인공 마석도(마동석 분) 형사의 이름 보다 더 많이 불리는 이름. 인천 북부경찰서 마약반 형사 황동구의 이름이다.
극중 황동구 형사를 연기한 배우 최동구(35)는 두 번의 시도 끝에 '범죄도시3'에 합류했다. '범죄도시2'의 오디션에서 떨어졌던 그는 '범죄도시3'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또 한 번 오디션에 응했고, 2시간40분이나 걸렸던 최종 오디션 끝에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캐스팅 당락이 결정되면 보통은 회사 실장님이나 이사님이 연락주시는데 그날은 운동을 다녀와서 쉬는데 마동석 선배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황야'와 '콘트리트 유토피아'를 선배님과 함께 작업했는데 그때 예쁘게 봐주신 건지…시간도 기억해요. (오후) 4시44분이었어요. 시계에 '사 사 사' 이렇게 뜨는데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받았어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전화를 건 마동석은 "역할이 있다, 너 해볼 수 있겠느냐, 해볼래?" 물었고, 최동구는 "선배님 저 이거 하고 싶습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선배님이 영화처럼 웃으시면서 '어 그래, 그 말이 듣고 싶었어' 하고 통화가 끝났어요. 제게 전화를 직접 하신 건 이 놈이 잘할 수 있을까, 용기가 있나, 하고 확인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황동구 형사 역할이야, 이거 하자'고 문자가 왔어요."
'범죄도시3'는 11일 기준 누적 778만2851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승승장구, 조만간 천만 관객 동원도 이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전작을 잇는 '범죄도시3'의 어마어마한 흥행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개성 넘치는 주조연 캐릭터들의 매력이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마동석을 비롯해 전석호, 김민재 등과 호흡을 맞췄던 최동구는 이 영화를 하면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장면을 만들어가는 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전)석호 선배님과 모텔 신을 찍을 때 너무 재밌게 찍었어요. 저를 비롯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너무 웃어서 촬영이 진행이 안 될 정도였죠. 버전이 되게 많았어요. 이것도 찍고 저것도 찍고. 마동석 선배님이 촬영을 하고 나서 현장에서 '야 라면 먹을래?' 하시면 배우들이 다같이 식당에 올라가서 라면을 먹고는 했던 기억도 있네요."
피해만 끼치지 말자, 맡은 역할을 책임지자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하지만 "(역할을)열심히 연구해오겠다"는 말에 마동석은 "연구하지 말고 그냥 즐겁게 하자"고 말해줬다.
"그냥 다치지 말고 즐겁게 하자고 하셨어요. 어깨에 진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셔서 그런 거 없이 정말 즐겁게 촬영했죠. 현장이 정말 좋고 즐거웠어요. 위험한 액션 신이나 중요한 무기가 있는 신일 때는 진지하게 촬영했지만요."
1988년생으로 올해 35세인 최동구는 드라마로는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2014)로 데뷔해 '힐러'(2014), '로봇이 아니야'(2017) '아스달 연대기'(2019) '킹덤: 아신전'(2021) '어게인 마이 라이프'(2022) '수리남'(2022) '커튼콜'(2022) 등에 꾸준히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 '아들의 이름으로'(2021) '유체이탈자'(2021) '마녀 Part2, the other one'(2022) '공조2: 인터내셔날'(2022) '대외비'(2023) 등의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 경험도 쌓아왔다.
나이에 비해 비교적 데뷔가 늦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가야 할 길을 걸을 뿐이다.
"저는 마라톤이라 생각해요. 천천히 가도 영혼으로 함께 가는 동행이 가장 진실한 달리기라 생각합니다. 천천히 묵묵히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숫자 역할을 많이 했거든요. 뭐뭐 3, 뭐뭐 2, 뭐뭐 6 같은 역할이요. 나오자마자 퇴장하는 휘발성 역할이요. 그렇지만 저는 제 역할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잠깐 나오는 역할이라도 제 역할에 책임을 지려고요."
잠깐 나오는 역할이 소중한 것은 예술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예술 작품에 참여해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어 즐거울 뿐이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예술의 암묵적인 목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대단한 게 아니어도 연극 한 편을 보고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 사랑해' 얘기할 수 있는 것처럼요."
처음부터 이렇게 성숙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연기를 전공, 석사까지 졸업했지만 졸업 후 맞닥뜨린 현실은 쉽지 않았다.
"대학에 100대 1, 200대 1 정도 되는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어요. 그런데 현장에 나가니 제가 200등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천천히 해야한다 생각하고 묵묵히 해왔어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힘든 것은 많이 있어요. 생계에 부딪치는 경우도 있고 오디션이 안 되거나 하면 제 자신만 뒤쳐지는것 같고, 그러다 보면 제 목표와 멀어지는 것 같고요. 그런데 저는 그럴수록 더 의심하지 않았어요. 돈은 어떻게든 벌면 되고 삶은 어떻게든 책임지며 살면 되는 거거든요. 그래도 역시 제일 힘든 건 연기를 할 수 없을 때였어요."
최동구는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오면 저절로 태양이 떠오르듯 자신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모든 것이 과정이라 생각하며 묵묵히 걸어오다 보니 유연해진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고 보니 일도 잘 풀렸다. 묵묵히 응원해주는 가족, 친구들의 지지와 애정도 마음을 지켜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저는 어디 가서 '배우는 힘들어' 이런 말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모든 직업에는 고충이 있잖아요. 비교할 건 아닐 수 있지만, 의사를 하려고 해도 겪어야 하는 시간이 10년이 넘잖아요. 이 직업은 졸업 후 2-3년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는 분들이 많아요. 희망 고문이라는 말이 어쩌면 굉장히 절망적이고 아픈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저는 희망고문이 제 삶의 원동력이었어요. 희망고문이 없었다면 배우 생활을 오래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최동구는 앞으로도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했다. 더불어 '순수하게' 사는 게 인생 최고의 목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지언정, 솔직하자. 좋은 배우가 되기 보다는 멋진 배우가 되자 하면서 살아요. 순진하진 않아도 순수하게 살고 싶고요. 슬프면 울고 좋으면 좋고 본성에 충실하고 본능에 충실한 감정으로 살래요. 전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