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어른들을 위한 관능·풍자의 향연

      2023.06.14 05:00   수정 : 2023.06.14 09:5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내연남이 이별을 통보하자 갑자기 총을 쐈다. 탕탕! 정유정의 살인사건이 신문을 도배하던 시점이었다. 범죄자가 주인공이라니, 순간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어른들을 위한 배우들의 관능적 춤과 노래, 14인조 빅밴드의 라이브 재즈 연주 그리고 1920년대 범죄와 부패가 만연한 미국사회를 대놓고 비트는 풍자와 위트에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더 나쁜지 헛갈리는 아수라장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두 나쁜 여자의 생존본능과 생명력은 감탄마저 자아냈다.

거리엔 유흥과 환락이 넘치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조차 못느끼는 살인자들로 만연하다. 시카고 쿡카운티 교도소에는 자극적인 범죄와 살인을 저지른 여자 죄수들이 있다. 그 중 보드빌 배우였던 ‘벨마 켈리’는 바람 난 남편과 여동생을 살인한 인물로, 교도소 간수인 ‘마마 모튼’의 도움을 받아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곧 정부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온 코러스 걸 ‘록시 하트’가 벨마의 악명 높은 인기를 빼앗아 간다. 뛰어난 언변술과 임기응변에 능한 돈을 쫓는 변호사 ‘빌리 플린’ 덕분이다. 여기에 선정적인 뉴스를 쫓는 언론까지 가세하며 세상은 요지경이 된다.

25년째 롱런 중인 미국 브로드웨이의 상징과 같은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 공연은 그렇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을 후끈 달궜다.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 25주년을 기념해 지난 2022년 10월 꾸려진 이번 내한 공연팀은 지난 8개월 북미 투어를 마치고 곧바로 한국에 입성했다.

오는 8월 6일까지 공연되는 '시카고'는 13일 인터파크 티켓에서 라이선스/내한 공연 기준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영화로 본 것보다 현장의 숨결이 강렬했다” “한국어 버전을 관람했을 때는 묘하게 이질감이 있었는데, 역시 원어로 들으니 느낌이 확 사네요” “지루할 틈 없이 휘몰아치는 즐거운 무대였다” 등의 호평이 눈에 띈다.

한 관객은 “무대가 화려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지만, 2시간 내내 흐르는 재즈 음악과 배우들의 아름다운 노래로 관객과 하나가 된다”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렇다. LED 화면을 이용해 시공간을 오가는 요즘 뮤지컬에 비하면 ‘시카고’의 무대는 단출하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14인조 빅밴드가 무대 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시카고'는 뮤지컬의 기본인 춤과 노래로 승부한다. 작품의 메인 테마인 ‘올 댓 재즈’에서 알수있듯 ‘시카고’의 음악은 재즈 풍이 지배적이다. 작품의 배경인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의 ‘대중가요’가 바로 재즈였기 때문이다. 밴드도 튜바, 트럼펫 등 미국적인 사운드를 표현하는 악기들로 편성됐다.

지휘자는 제2의 배우나 다름없다. 특히 지휘자가 공연 중 익살맞게 배우들과 대사를 주고받는 모습과 막간에 연주되는 신나는 밴드의 애드립은 뮤지컬 ‘시카고’만의 특별한 즐거움이다.

희극에 노래와 춤을 더한 보드빌 형식의 무대도 ‘시카고’만의 차별점이다. 보편적인 기승전결의 플롯 구조가 아니라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는 등 에피소드 위주의 서사극 형식을 취한다.

측은지심을 자아내는 록시의 남편과 억울하게 남편을 살해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교수형을 당하는 여자 죄수 등 몇몇을 제하면 그야말로 매력적 악역 캐릭터의 향연이다.

강렬한 조명 하에 배우들의 섹시한 춤도 볼거리다.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이 한두명이 아니다. 그들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코믹하게 당시 시대를 야유하고 조롱하며 사회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이자 희곡작가였던 모린 달라스 왓킨스가 1926년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쿡 카운티(Cook County)의 공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연극 ‘시카고 A Brave Little Woman’가 원작이다.
1927년 무성영화 ‘시카고’와 1942년 극 중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록시 하트’가 연이어 제작되면서 빅히트를 쳤다.

뮤지컬 '시카고'는 1975년 전설적인 안무가 '밥 파시'에 의해 처음 무대화 된 이후, 1996년 연출가 ‘월터 바비’와 안무가 ‘앤 레인킹’에 의해 리바이벌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25년간 1만회 이상 공연됐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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