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실신시킨 첸치의 눈빛… 산탄젤로 성 천사는 어떻게 봤을까

      2023.06.16 04:00   수정 : 2023.10.25 16:25기사원문
#1. 1599년 9월11일 로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테베레 강의 산탄젤로(Sant'Angelo) 다리. 기껏해야 갓 스무살이 넘었을 앳되고 청순한 여인이 끔찍한 참수형을 앞두고 군중들에 둘러싸인 채 섰다. 가끔씩 고개를 돌린 채 군중을 바라보는 눈은 때론 멍한듯 순수하고, 무표정한 얼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아름다웠다. 지켜보던 시민들이 저마다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냈다.

그녀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로 첸치 백작의 막내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죄명은 가족과 공모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 백작은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음탕한 행동까지 악명이 자자했습니다. 폭력은 가족들에게 더욱 심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체를 감금하고 강간하는 범죄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이런 폭력과 만행에 베아트리체의 새어머니, 오빠, 이복동생 등이 함께 로마교황청에 신고했지만 교황청은 이를 번번히 묵살했습니다. 첸치 백작은 교황 클레멘스 8세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하인들과 힘을 모아 첸치 백작을 독살하기로 계획하고 첸치 백작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머리를 망치로 내리쳐 성벽에서 떨어진 것처럼 위장합니다. 하지만 곧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교황청으로부터 가족 전부가 사형을 선고 받습니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로마 시민들은 첸치 일가의 구명을 요구했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형이 확정되고 베아트리체의 새어머니와 오빠의 시신이 거리에 내걸립니다. 이어 베아트리체 차례가 되자 로마 시민들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위해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곧 베아트리체는 그 자리에서 참수를 당합니다. 이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던 스물다섯살의 화가 귀도 레니(Guido Reni)는 베아트리체 첸치의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이게 그 유명한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1600년, 75*50cm, 유채,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고전회화관)'입니다. 고개를 돌린 채 쳐다보는 힘없는 눈빛은 너무도 많은 것을 말하는듯 합니다. 그러나 어두운 배경 속 흰색 두건을 두르고 흰 옷을 입은 그녀의 얼굴은 처연함보다 오히려 담백한 의연함이 느껴집니다. 오히려 슬픔이 묻어나지 않는 순백의 모습이 더욱 슬픔을 자아냅니다.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베아트리체 첸치와 눈을 마주친 프랑스 유명 작가 스탕달은 거의 실신합니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버립니다. 다른 관람객 일부도 스탕달과 유사한 증상을 호소합니다. '스탕달 증후군'입니다. 이 현상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보게 되면 순간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져 호흡곤란, 경련, 마비 등의 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첸치 가족이 몰살당한 산탄젤로 다리는 로마 시내와 산탄젤로 성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산탄젤로 성의 상징은 꼭대기에 청동상으로 우뚝 서 있는 미카엘 대천사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이 날의 비극을 어떻게 지켜봤을까요.

#2.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게나."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마지막 순간을 예감한 듯 근위대를 향해 낮은 음성을 힘없이 내뱉었다. "성하, 저희가 끝까지 사수하겠으니 어서 피하시옵소서." 교황을 둘러싼 건장한 근위병들이 흐느끼며 외쳤다. 500여명이 넘던 근위병들은 거의 다 죽고 이제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은 고작 42명에 불과했다. 죽기를 각오한 근위병들이 뒤돌아 신성로마제국 군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둘씩 쓰러지는 근위병들을 뒤로 하고 교황은 비밀 통로를 통해 산탄젤로 성으로 들어갔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 카를5세가 로마를 침공했을 당시의 일이다. 교황은 산탄젤로 성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로마 교황령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의 역사는 이날부터 시작됐습니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굵은 줄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장창을 들고 근엄하게 서있는 스위스 근위대는 바티칸의 상징입니다. 교황령은 이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스위스 출신 젊은이로만 근위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세 용병 부대 중 가장 유명한 게 스위스 용병이었습니다. 스위스 용병은 알프스 산악지대에서 자라 신체가 건장한데다 전투력이 최강인데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감함이 특징이었습니다. 프랑스-잉글랜드 간 백년전쟁을 비롯해 중세 모든 전쟁에서 맹위를 떨쳤습니다. 로마 교황도 이들을 적극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지금의 스위스는 부자 나라지만 당시에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산악지대인데다 무역활동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이 좋은 용병은 가장 좋은 직업이었습니다. 따라서 스위스 용병들은 자신들이 등을 보이고 물러나면 후손들이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걱정해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는 것을 택했다고 합니다. 클레멘스 7세 뒤를 지키던 42명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또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앙뚜아네트가 머물던 튈르리 궁을 지키던 786명도 모두 전사했습니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은 바로 이들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는 작품입니다.

산탄젤로 성은 이처럼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서기 134년 공사를 시작해 139년 완성된 산탄젤로 성은 원래 로마 오현제 중 하나로 꼽히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을 비롯한 후대 왕의 영묘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421년 요새로 개조된 후 나중에는 교황의 성으로 존재했습니다. 산탄젤로 이름을 얻은 것은 590년 경 로마 시내에 역병이 창궐하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신에게 참회 기도를 올리고 돌아오면서 산탄젤로 다리를 지나는 도중 산탄젤로 성 꼭대기에서 대천사 미카엘이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닦은 후 검집에 넣는 모습의 환시를 봤다고 합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이를 "역병의 재앙에 대해 사람들이 충분히 참회를 마쳤으며, 신이 이에 만족하신 징표"라며 이 요새를 '천사의 성', 즉 '산탄젤로'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3. 산탄젤로 성은 교황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늘 교황의 피난처가 됐습니다. 앞서 1494년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프랑스 샤를 8세의 로마 침공을 피해 이곳으로 달아나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는 13세기 경 교황 니콜라스 3세가 베드로 성당과 산탄젤로 성을 잇는 800미터 길이의 비밀통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댄 브라운 원작의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주인공들이 이 비밀통로를 통해 도주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산탄젤로 성의 모든 것을 지켜본 미카엘 대천사가 라벨에 그려진 와인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생산되는 발디까바(Valdicava)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urnello di Montalcino)'입니다. 몬탈치노에서도 가장 좋은 포도가 난다는 몬토솔리(Montosoli) 지역의 산지오베제(Sangiovse) 100%로 만드는 와인입니다. 검은색 과실과 꽃향기, 바닐라 터치, 장엄한 구조감으로 유명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스타 와인입니다. 특히 리제르바 급 상위 라인 '발디까바 마돈나 델 피아노(Valdicava Madonna del Piano)'는 구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 팀 애킨스(Tim atkins)는 발디까바를 2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은 "여지껏 마셔본 가장 뛰어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발디까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세컨 와인 '로쏘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를 열어봅니다. 귀여운 아기천사의 모습이 그려진 라벨의 와인입니다. 진하지 않은 루비빛 와인으로 잔에서는 산지오베제 특유의 감칠맛 향과 함께 붉은 과실 향이 확 올라옵니다. 스월링 할수록 바닐라 향도 느껴지며 동물향이 몽글몽글 떠다니는 느낌입니다.
입에 넣어보면 제일 먼저 강력한 타닌이 반기는데 좋은 산도가 와인을 발랄하게 만듭니다. 산도는 미디엄 하이 혹은 하이 수준으로 아주 높습니다.
와인이 입에서 사라지고 남는 것은 두꺼운 타닌과 기분좋은 산도, 그리고 진한 동물향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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