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춤한 김은희 작가, 김태리 손잡은 오컬트 '악귀' 어땠나
2023.06.25 06:30
수정 : 2023.06.25 06:30기사원문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김은희 작가의 신작 '악귀'가 눈을 뗼 수 없는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지난 23일 베일을 벗은 SBS 금토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연출 이정림/제작 스튜디오S, BA엔터테인먼트)의 대본을 쓴 김은희 작가는 한국형 장르물 드라마의 대가로 불리는 작가다. 법의학을 소재로 한 '싸인', 사이버 수사물을 다룬 '유령' 타임슬립 판타지와 수사물, 드라마를 적절하게 조합한 '시그널' 한국에서는 시도된 적이 없는 좀비가 등장하는 사극 '킹덤'까지,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 한국드라마에서 김은희 작가가 보여준 새롭고 강렬한 장르물은 더욱 빛을 냈다.
매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며 더욱 많은 기대감을 받아왔던 김은희 작가. 하지만 가장 최근 작품인 tvN '지리산'(2021)의 경우는 특히 뚜렷한 호불호 반응이 나오며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받았다. 지리산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렸지만, 초반부 어설픈 CG(컴퓨터그래픽)이나 뚜렷하지 않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최고 시청률 10.7%(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달성했지만 전지현과 주지훈이라는 스타 캐스팅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었다.
2년 만에 돌아온 김은희 작가는 '악귀'를 통해 민속한을 접목한 한국형 오컬트 드라마를 선보였다. 악귀에 씐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김태리 오정세 그리고 김원해 홍경 등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주연으로 포진했다.
'민속학을 접목한 오컬트 장르'라는 다소 생소해보이는 이야기에 대한 우려도 나왔으나, '악귀'는 첫방송부터 보다 생활밀착형 이야기로 몰입도를 높였다. 각 인물들이 가진 설정이 지루하지 않게 설명이 됐고 이들이 행동에 나서야만 하는 동기와 배경도 밀도있게 전달되었다. 오컬트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음산한 분위기와 소름돋는 장면들도 등장하면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로 펼쳐졌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생활고를 겪는 구산영(김태리 분)은 존재도 모르고 살았던 아버지 구강모(진선규 분)의 장례식에 갔다가 할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댕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사별했다고 거짓말을 했던 어머니 경문(박지영 분)은 절대 받지 말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산영은 더욱 의문에 빠진다. 산영은 또 다른 민속학 교수인 염해상(오정세 분)과 우연히 만나는데, 염해상은 산영에게 악귀가 붙었다면서 주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산영은 그런 해상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해상의 말이 현실이 되자, 다시 그를 찾아간다.
밀도 높게 채워진 '악귀'의 시작이었다. 생활력이 없는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고단한 일상을 사는 청년 산영의 이야기, 산영과 어머니를 벼랑 끝에 몬 보이스피싱 범인의 죽음, 시세보다 싸게 나온 방에 입주했다가 괴상한 일을 겪는 산영의 친구의 삶, '귀신 보는 교수'라는 학생들의 수군거림이나 민속학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꿋꿋이 사는 염해상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사람들의 욕망을 먹으며 커지는' 악귀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산영과 해상이 반드시 이를 막아야만 하는 동기도 확실히 그려졌다. 산영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배경을 이해해야 했고, 해상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붙었던 악귀가 산영에게서 다시 등장한 비밀을 풀어야만 했다.
'귀신'을 비롯해 붉은 댕기, 금줄, 흑고무줄 등 민속학적 소재가 장르적 색채를 더욱 뚜렷히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현실과 거리가 멀지 않은 이야기의 몰입도가 높았다. 보이스피싱 범죄, 학교폭력 등 현실과 맞닿아있는 범죄들이 등장한 것도 한 몫 했다.
김태리는 특유의 밝고 씩씩한 에너지로 산영을 그린 가운데 오컬트 드라마가 주는 음산한 분위기에서는 또 다른 얼굴과 눈빛으로 시선을 끌었다. 오정세 역시 해상이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인물임에도 캐릭터의 배경과 서사를 단숨에 전달하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산영, 해상 둘과 사건으로 연결된 경찰 문춘 역의 김원해, 주목받는 신예 홍경도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악귀'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강렬한 이야기를 쉽고 빠르게 전달하면서도 장르물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호평이다. '문을 조심하라'는 1회 엔딩처럼 '문 열고 닫을 때 무섭다'라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득한 리뷰들은 시청자들이 '악귀'의 이야기에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1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시청률 9.9%(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같은 날 처음 방송한 동시간대의 MBC 금토드라마 '넘버스'가 기록한 4.4%를 압도하는 수치다. SBS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 타율이 좋은 금토드라마 블록에서 전작 '낭만닥터 김사부3'는 12.7%로 출발해 16.8%로 종영했고, '모범택시2'도 21.0%를 유종의 미를 거둔 바 있다. 이에 '악귀'의 최종 성적과 평가에도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