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시간조차 아까우셨나요”...故주석중 교수 유품에는 ‘라면스프’ 있었다

      2023.06.28 08:40   수정 : 2023.06.28 08:4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최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장남 현영씨가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주 교수의 연구실 책상 밑에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다며, 주 교수가 평소 식사 시간조차 아까워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것 같다고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주 교수, 몸 돌보지 않던 아버지 모습 그대로였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주 교수의 장남 주현영씨가 추모객들에게 전한 감사 메시지를 공개했다.



주씨는 “여러분께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저희와 함께해 주신 덕분에 아버지 장례를 무사히 마쳤다”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별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비통했지만, 정말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 주시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 주셔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주씨는 “장례를 마치고 며칠 후 유품을 정리하러 연구실에 갔었다”며 “방금 수술복으로 갈아 입고 나가신 것 같은 옷가지들과 책상 위 서류들과 몇 개의 메스와 걸려 있는 가운 등 금방이라도 돌아오실 것 같은데 다시 뵐 수 없음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주씨는 “쓰시던 책상 서랍 여기 저기, 그리고 책상 아래 한켠에 놓여진 박스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다.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며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아팠다”고 전했다.

그는 “정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는 서류들 속에는, 평소 사용하시던 만년필로 직접 쓴 몇 개의 기도문이 있었다. 벽에 있는 작은 게시판에도 기도문 한 장이 붙어 있었다”며 “영문으로 쓴 그 기도문 한 구절은 이렇다.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 (하지만 실제 치유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아버지 빈소에 펑펑 울면서 찾아온 부부 사연도 전해

주씨는 과거 주 교수로부터 대동맥 박리 수술을 받은 환자가 빈소를 찾은 사연도 공개했다.

주씨는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 갑작스런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들 기피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집도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 하시고 슬퍼하셨다”며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떻하겠냐’고,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러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씨는 “많은 분들께서 저희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 주셨다. 여러분이 기억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시 한 번 귀한 걸음 하셔서 아버지 가시는 길 배웅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한편 병원 10분 거리에 거주하면서 응급 수술을 도맡았던 주 교수는 지난 16일 오후 1시 20분께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패밀리타운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노환규 전 회장은 주 교수에 대해 “국내 대동맥 수술의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라며 “유능한 의사의 비극은 한 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늘의 뜻이겠지만, 인간의 마음으로는 너무나 슬픈 일”이라고 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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