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미뤄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이 순간도 보험사기는 '기승'
2023.06.29 05:00
수정 : 2023.06.29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지난 1998년 11월에서 2000년 10월 사이에 덤프트럭을 운전하며 6차례에 걸쳐 2억4000여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것을 기점으로 보험사기를 벌였다. 네 번째 아내의 명의로 3개 보험사에서 최고 6000만원~2억70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는 운전자상해보험 등 4개 보험을 가입한 그는 2005년 10월 장모 집에 있던 아내를 장모와 함께 화재사고로 숨지게 해 보험 최고액인 4억8000만원을 수령했다. 강호순이 1998년부터 보험사기를 통해 부당수령한 보험금은 7억2000만원이다.
#지난 2022년 12월, A씨는 사망보험금으로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60대 친모에게 장기간에 걸쳐 자동차 부동액을 먹여 살해했다. 당시 경찰은 친모의 사망원인을 변사로 처리했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 시신에서 부동액 성분이 검출돼 A씨를 용의자로 수사 후 체포했다.
#B브로커 조직(병원홍보회사) 브로커들은 C병원과 홍보광고대행계약을 체결한 후 "실손의료보험금 청구가 불가능한 약제를 처방받으면서도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며 환자들을 모집, C병원에 알선했다. 이후 C병원은 보험대상이 되지 않는 보신제를 다른 치료제인 것처럼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고, 통원횟수를 부풀린 청구서류를 교부해 환자들로 하여금 실손의료보험금을 수령토록 했다.
#D씨는 페이스북·인터넷 카페 등 SNS를 통해 보험사기 공모자 모집 광고를 '단기 고액 알바' 등 구인광고로 위장해 공모자들을 모집했다. 이후 이들을 자동차에 동승시킨 채 고의 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편취했다.
지난 2016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제정·시행됐지만 보험사기는 점차 지능화·고도화되는 양상이다. 보험사기 적발 금액 및 규모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7일 개최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상정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이 논의조차 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1조818억원, 적발인원은 10만2679명
29일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전년(9434억원) 대비 1384억원 증가한 1조818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적발 인원 또한 10만2679명으로 전년(9만7629명) 대비 5050명 늘었으며, 1인당 평균 적발금액은 1050만원으로 고액화되는 추세다.
사기 유형별로 봤을 때는 사고내용 조작 유형이 61.8%(6681억원)을 차지했으며, 허위사고가 17.7%(1914억원), 고의사고가 14.4%(1553억원) 순이었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보험사기 유형인 사고내용 조작 유형을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해당 유형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진단서 위변조와 입원수술비 과다청구 유형이 전년(1835억원) 대비 633억원(34.5%) 증가했다. 아울러 허위 내지 과다 입원, 진단, 장해 등 상해나 질병 보험상품 관련 사기가 크게 늘어나며 전체 적발규모에서 손해보험 관련 사기 적발 금액(94.6%)이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SNS로 범위 넓히고, 병원에서 판 치는 보험사기...강력범죄에도 연루
금감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기 수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지난 2020년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젊은 층이 SNS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공모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들은 렌터카 등을 이용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고액의 합의금을 편취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또 병원과 브로커가 공모해 환자공급 대가로 진료비의 일부(10~30%상당)를 수수료로 지급하고 병원은 이를 보전하기 위해 과잉·허위 진료를 통해 실손보험금을 편취하는 사례도 만연하다. 의료인이 아닌 자가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이 가상병실을 만들어 입원처리만 하고, 실제 입원을 하지 않은 환자에게 허위 입·퇴원확인서를 발급 후 민영·공영 보험금을 편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 지난해 10월 남편 명의로 다수 보험에 가입한 후 모자가 공모해 남편·아버지를 독극물과 둔기로 살해하는 등 보험금 부당수령 목적이 강력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 없었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제는 개정되어야"
현재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으로 올라가 있는 법안의 주요 내용은 △보험범죄 합동대책단 설치 △보험사기 알선·권유 금지 △보험사기 편취보험금 환수 △보험사기 보험계약 해지 △보험산업 관계자 가중처벌 △보험사기업자 명단 공표 △금융위의 보험사기 근절 위한 관계기관 자료제공 요청권 도입 △보험사기목적 강력범 가중처벌 등이다. 지난 2016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법안은 단 한 차례의 개정도 거치지 않은 상태이며, 개정안은 계류된 채 논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27일 정무위에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이 올라왔지만 논의되지 못했다.
황현아 보험연구원 박사는 "보험사기 행위를 더 효과적으로 적발하기 위한 수단이 개정안에 반영돼 있다"며 "특히 금융위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요청권이 도입될 경우, 공보험과 사보험 간 보험사기 관련 자료 교환이 원활해져 적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 박사는 강력범죄와 관련해서도 "(개정안 통과 이후) 보험사기 적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적발되었을 경우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확실해진다면 전체적인 강력범죄는 몰라도 보험금을 노리는 강력범죄에는 (감소)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험업계 관계자 역시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코로나로 인한 생활고 탓에 보험사기 행위는 날이 갈수록 고도화·조직화 되고 있지만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은 2016년 제정된 이후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행해지고 있는 보험사기 행위들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방지하여 선량한 보험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