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플레이션과 엽기 떡볶이
2023.07.09 12:00
수정 : 2023.07.09 12:00기사원문
2014년 4월 카스(하이트)와 오비(오비맥주)로 양분된 맥주시장에 클라우드(롯데주류)가 새로 등장했다. 회사는 전지현을 모델로 '물 타지 않은 프리미엄 맥주'임을 강조했다. 2021년 10월에는 닭고기로 유명한 하림이 '더 미식 장인라면'을 출시했다.
클라우드와 장인라면의 사례처럼 경쟁이 치열한 식품 시장에 후발 주자가 뛰어들 경우 보통 '프리미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고급화 전략으로 틈새 수요를 공략하고 수익성을 높게 가져가기 위한 식품 회사의 전략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후발 주자 특성상 처음부터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생산설비를 갖추기 어려우므로 애초에 저가전략을 쓰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생산량 자체가 적은 상황에서 초기 시장 안착을 위해 시간 벌기 용으로 적게 팔아도 많이 벌 수 있는 '프리미엄' 전략을 쓰는 것이다.
2011년 농심은 신라면 블랙이라는 프리미엄 라면을 출시했다. 신라면 25주년을 기념해 우골 스프를 넣어 설랑탕 한 그릇의 맛과 영양을 표방했다. 가격은 1600원으로 일반 라면보다 2배 이상 비쌌다. 하지만 서민 음식의 대표인 라면의 가격을 올린 것이 국민 감정을 건드렸다. 공정위가 1억5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출시 약 4개월 만에 잠정 생산 중단에 들어갔다. 12년이 지난 지금 신라면 블랙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에 이름을 올렸고, 미국에서 절찬 인기를 끌고 있다.
■버거플레이션과 엽기떡볶이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에 미국 3대 버거 체인 중 하나인 '파이브가이즈'가 오픈했다. 오픈 첫날 오전에만 700여명의 손님이 몰렸고 오픈 런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강남 거리를 가득 채웠다. 비가 오는 날씨에 햄버거 하나를 먹기 위해 서너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햄버거의 가격이었다. 햄버거(1만3400원), 감자튀김(8900원), 밀크쉐이크(8900원)로 구성된 세트를 시키면 3만1200원이 나온다. 버거의 싸이즈가 커서 입이 쩍 벌어지긴 하지만 가격에 또 한번 입이 쩍 벌어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햄버거 발 물가 인상, '버거플레이션(버거+인플레이션)'이다. 파이브가이즈에 앞서 프리미엄 버거의 또 한 사례로 고든 램지 버거도 자주 언급된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문을 연 고든 램지 버거는 트러플과 한우를 넣은 14만원 버거를 선보였고, 단품 버거의 가격도 3만원대로 책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 유튜버, 인스타그램 '인싸' 들은 줄을 서서 해당 버거를 먹었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판매자의 자유다. 높은 가격은 수요를 감소 시키고 판매량 감소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최근 SNS 유행에 따른 '보여주기', '인증' 문화로 인해 오히려 가격이 비싸고 접근성이 떨어질 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과시적 소비를 '베블런 효과'라고 정의한다.
최근의 버거플레이션은 과거 유튜브에서 유행했던 '엽기떡볶이'를 떠올리게 한다. 엽기떡볶이는 배달 음식 시장의 성장, 유튜브 먹방의 유행과 함께 대히트를 쳤다. 남자에게 '돈가스'와 '제육'이 있다면 여자들의 최애 메뉴로 꼽히는 '떡볶이'인데다 중독성 강한 매운맛이 비결이었다. 오죽하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배달료를 포함하면 2만원 가량으로 떡볶이 가격이 치킨 한 마리 가격에 달했지만 많은 양과 중독성으로 사랑받았다. 엽떡의 히트는 떡볶이는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부셨다. 물론 이로 인해 '떡볶이플레이션'이 생긴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다.
과거 무료였던 배달료의 유료 전환도 전반적은 음식가격 인상에 영향을 끼쳤다. 2018년 교촌치킨은 프랜차이즈 최초로 2000원의 배달료를 받기 시작했다. 배달앱 시장의 성장 등으로 배달 주문이 늘자 배달대행을 통한 배달 수요가 급증했고 이로 인해 배달비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가맹점 입장에서는 배달앱 수수료와 각종 광고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음식 가격을 인상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가격 인상보다 더 나쁜 가격 통제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서 가격 인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스레 결정되고 잘못된 가격 인상 정책은 역풍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가격 인상을 한 뒤 항상 나오는 말이 "임대료, 전기료, 인건비, 원자재 값 상승 등 불가피한 사유로 어쩔 수 없이 인상했다"는 말이다. 대부분 소비자들도 가격 인상 직후에는 저항하지만 이후 오른 가격에 적응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경우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이라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최근 정부의 압박으로 일부 라면 회사와 식품 회사들이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몇몇 제품에 한해 가격이 내려 체감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요즘 같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가격 동결도 아닌 인하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다.
식품 회사 입장에서는 기존 제품의 가격 인상은 소비자 저항이 예상되니 아예 새로운 메뉴를 출시하며 가격을 높이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맥도날드의 경우 아직도 해피밀 등 기존 일부 메뉴는 5000원 정도에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햄버거들의 경우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재료와 맛을 자랑하긴 하지만 버거 하나에 7000원~9000원 등으로 상대적으로 비싸다.
1인 기준 3만원 햄버거 세트의 등장에 입이 쩍 벌어지긴 하지만 정부 압박에 민간 회사들이 가격을 낮추는 일은 골이 띵하게 신기한 일이다. 잠깐 몇 년이야 가격 인하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렸던 가격 이상으로 용수철처럼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 그게 경제학 원론의 가장 기본 원리 중 하나인 수요와 공급에 의한 시장의 균형 가격이기 때문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