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물의 도시, 작은 교토 별명 많은 '히타'
2023.07.15 06:00
수정 : 2023.07.15 06:00기사원문
#.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은, 절경 속을 지나는 줄도 모르고 같이 걷는 동료들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여행자들로, 우리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 속에 둘러싸여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이란 건 그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길동무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작가 요시다 슈이치가 그의 소설 '워터'에 쓴 글이다.
지난 주말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봤다.
렌터카 여행 중 들렸던 '분고모리 역'의 모습이 작품에도 그대로 나왔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감독이 작품 속에 담지 않았다면 폐허가 된 분고모리 역은 그냥 거기에 있을 뿐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거다. 사람들이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 곳이 정말 아름답고 멋지기 때문도 있을테지만 그보다 더 큰 동기는, 그 장소에 있는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혼자일 때보다 동행이 있을 때 더 커진다.
지온노타키 폭포와 히타의 야경
3일째 아침, 유후인을 떠나 △벳푸 지옥 온천 △사기리다이 전망대 △코코노에 꿈의 현수교 △분고모리 역사를 구경하니 시간은 오후 5시를 향해 갔다.
다음 목적지는 히타시 오이타현에 있는 지온노타키 폭포 였다. 지온노타키 폭포는 상단 20m, 하단 10m 등 2단으로 이뤄진 폭포다. 폭포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폭포가 만드는 포말이 피부에 닿을 듯 하다. 폭포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데 현지 택시를 탄 한 모녀가 내려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택시 투어를 하려면 적어도 십만원 이상은 들텐데, 렌터카를 빌려 온 것은 다시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온노타키 폭포 뒤쪽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고 하는데 출입이 금지된 상황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6월 초의 지온노타키 폭포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검은색 잠자리들을 수풀에서 수 십 마리 볼 수 있었다. 또 폭포 바로 옆에 있는 한 소바집에서 늙고 지쳐 보이는 고양이도 만날 수 있었다.
히타에 있는 숙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다시 이동했다. 가는 길에 구글 지도에 표시된 '카에데 폭포'에도 잠시 들렸다. 산속 깊은 곳의 2차선 도로에 차를 임시로 세워두고 도로 난간에서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폭포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텐류하시 공원이라는 아주 작은 공원이었는데 우연히 들린 이곳은 이날 봤던 어느 곳과 비교해도 만족스러웠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공원으로 주차 공간에 차를 대고 내리니 일본의 전통 가옥이 가득한 히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공원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지난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함께 고양이 간식을 사지 않은 게 너무 후회됐다. 공원을 구경하는 내내 따라다니며 바닥에 누워 배를 발랑까고 애교를 부렸지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텐류하시 공원 인근에 있는 현수교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해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책이나 여행 안내소에 나오는 그 어느 명소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멋진 야경을 볼 수 있었다. 히타를 흐르는 큰 강 위로 붉은색 태양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진격의 거인 도시, 히타
숙소는 히타 시내에 있는 '소시아 호텔'로 예약했다. 하루 전 예약이라 4인 기준 1일 숙박비(방 2개)는 20만원 중반대로 싸지는 않았다.
호텔에 들어서자 한국에서도 히트한 만화 '진격의 거인'의 각종 캐릭터와 장신구, 피규어 등이 눈길을 끌었다. 히타는 '진격의 거인'이 태어난 마을로 유명하다. 더불어 히타는 마을 곳곳에 강이 흐르고 수로가 있어 '물의 도시'로도 불린다. 또 과거 일본 천황이 다스렸던 도시의 옛 거리 모습도 남아 있어 '규슈의 작은 교토'라고도 불린다.
히타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고는 호텔에 있는 욕탕에서 간단하게 씻었다. 사우나 시설도 갖춰진 나름 괜찮은 시설이었다. 간단하게 동네 산책을 했지만 시골 동네라 그런지 오후 7시에는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고 있었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대부분 식당들은 문을 닫았고, 일부 이자카야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검색을 하고 우연히 '조이밀'이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24시간을 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인테리어와 서비스는 한국의 뷔페식 레스토랑과 비슷했지만 가격대는 김밥천국과 비슷한 컨셉이었다. 스파게티, 덮밥, 튀김, 우동 등 엄청나게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가격은 500엔~1000엔 정도로 저렴했다.
또 개인당 약 200엔 정도를 추가하면 식당안에 갖춰진 음료 자판기에서 탄산음료와 커피 등을 무제한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조이밀'이라는 이 프렌차이즈는 저렴한 가격과 외식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30년째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일본의 소도시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 빡빡한 일정 탓에 이날은 늦은 저녁을 먹고 바로 잠에 들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