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산 조미료 미원
2023.07.20 18:09
수정 : 2023.07.21 11:05기사원문
미원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위조품과 '일미' '미락' '미량' 등 아류 제품들이 나돌았다. 미원은 1965년 서울 방학동 공장을 가동했고, 2년 후에는 생산량이 100t을 넘어서 시장점유율 선두를 빼앗기지 않았다. 미원은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어 우리 식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신문에서 조리법을 소개할 때도 조미료라는 이름 대신 미원을 그대로 썼다. 삼성그룹의 제일제당은 '미풍'을 내놓고 미원에 도전했지만 아성을 허물지 못했다(미원과 미풍의 경쟁은 다음 편). 제일제당은 '다시다'로 대반격에 나서 미원과 호각지세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원은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하며 탄탄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고, 동남아 등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다. CJ제일제당은 그때의 미풍을 지금도 생산·판매하고 있다. 한편 아지노모토는 CJ제일제당을 상대로 ′감칠맛 소송′을 내 지난 2월 CJ가 40억엔(약 360억원)을 지불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동아일보 1957년 11월 3일자에 실린 최초의 미원 광고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