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주먹질까지…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
2023.08.02 18:18
수정 : 2023.08.02 18:18기사원문
■막무가내 요구에 지친 공무원
2일 기자가 주요 공공기관 종사자, 교원 등에 문의한 결과 1년 이상 대면 민원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폭언, 욕설, 흉기 위협 등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에서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 A씨는 "자격에 미달하지만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경우라 자주 있다. 아무리 규정을 설명해도 듣지 않는다"며 "소리 지르고 폭언과 욕설을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정신적으로 힘들다. 힘으로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수도권 초등학교 교원 B씨도 "학부모 중에 자신의 아이만 죄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다툼을 겪은 상대방 아이의 강력한 처벌만을 요구하는 분들이 있다"며 "학칙 등의 사유를 들어 정당한 절차를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번지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지난달 21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청에서 민원인이 30대 공무원의 목을 양손으로 조르는 등 위협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민원인은 건축물 해체 허가 관련 민원으로 공무원과 상담하던 중 서류 보완이 필요하다는 말에 이와 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2020년 경기도 시흥의 한 주민센터에선 50대 민원인이 "긴급생계비가 예정된 날짜에 입금이 안 됐다"며 흉기 난동을 벌여 공무원 1명이 상해를 입었다.
공직에 있는 사람에게 담당업무 이외의 일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순경 C씨는 "지난해 하수구에 빠진 반지를 꺼내달라는 민원을 접수받고 출동한 적이 있다. 하수구에 자기 손을 넣기 더럽다는 이유에서였다"며 "이런 일을 하려고 경찰관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고백했다.
■악성 민원 3년만에 50.5% 늘어
이처럼 상식 밖의 악성민원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분위기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폭언과 폭행 등 악성민원을 받은 사례는 지난 2021년 5만1883건이다. 2020년(4만6079건), 2019년(3만8054건)을 거쳐 3년 전인 2018년(3만4484건)과 견줘 50.5% 급증했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은 "단순 폭언이나 욕설은 통계에 들어가지도 않는다"면서 "악성민원인은 관청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법률적으로 대응하는) 전문팀을 만드는 등 강화된 대응이 필요하다. 처벌도 강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위원장은 "정부 지침은 증거를 확보하라는 것인데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 민원인의 가해가 이뤄진다"며 "'가림막을 해달라'·'청원경찰 배치해달라'·'보디캠 처리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이행률이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악성 민원 사례가 늘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7월 민원처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난 4월 시행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민원인 폭언·폭행에 대한 법적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를 의무 지정토록 했다. 또한 민원 처리 담당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영상정보처리기기, 호출장치, 보호조치음성안내 등 안전장비와 안전요원을 배치토록 했다. 민원인의 폭언이나 폭행 등이 발생했거나 발생하려는 때에 휴대용 영상음성기록장비(바디캠), 녹음전화 등도 운영토록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악성민원이 사회적 관심사가 아니었다. 공무원이 민원인을 친절하게 대하고 민원을 들어줘야 한다는 인식이 익숙했다"며 "(악성민원 관련 법개정 등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예병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