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에 후원아동과 첫 만남… 우리에겐 잊지못할 일주일"
2023.08.04 04:00
수정 : 2023.08.04 07:00기사원문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의 '비전로드'를 통해 딸과 함께 잠비아 해외봉사를 다녀온 서진영씨(43)는 3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월드비전이 현지에서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고, 너무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씨는 지난 2007년 첫째인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잠비아 소녀 '루스'를 후원해왔다.
다니던 교회에서 월드비전의 다양한 해외봉사 성과를 알게 됐고, 거기에 감명 받았다는 서씨는 둘째인 딸 김영서양(13)과 함께 후원 아동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월드비전 '비전로드'를 통해 후원 아동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비전로드'는 월드비전의 지역개발 사업현장을 방문해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역주민 및 후원 아동과의 만남과 봉사 활동을 통해 후원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서씨는 "딸아이와 함께 이번 여름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봉사 활동 프로그램을 찾던 중 때마침 월드비전에서 해외봉사 관련 안내문이 왔고, 저나 아이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비전로드'를 신청하게 됐다"고 전했다. 해외봉사를 통해 보람을 느끼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는 서씨와 딸 영서양을 만나 해외봉사와 관련한 에피소드와 소회를 들어봤다.
ㅡ월드비전에서 잠비아로 떠나기 전 어떤 교육을 받았나.
▲오리엔테이션을 한번 했다. 가서 주의할 점이나 수칙 등을 알려주셨고, 월드비전이 펼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일주일간 비전로드를 떠날 16명의 후원자들과 친해지는 시간도 가졌다. 같이 가신 분들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후원자들이 똑같은 마음을 안고 잠비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ㅡ일주일간 잠비아에서 후원 아동을 만났던 에피소드는.
▲아이를 만나기 전 설레기도 했지만 어색할 수 있어 걱정도 됐는데 막상 마주하자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도 금방 저를 알아보고 맑은 눈을 반짝이며 생긋 웃어 줬는데 너무 반갑고 기뻤다.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너무 예쁘게 잘 자라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점심을 먹은 후 한국에서 가져간 운동화를 선물했는데, 너무 좋아해줘서 기뻤다. 루스도 아프리카 여성들의 전통 치마인 '치탱게'와 직접 만든 바구니를 선물로 준비해 왔다. 또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도 내밀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좋은 선물을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여서 더욱 애틋하고 미안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최근 후원을 시작한 '미얀다'라는 친구도 엄마와 함께 왔는데 수줍어서 말도 잘 못하고 몸을 꼬는 모습이 너무 순수하고 예뻤다. 미얀다에게도 운동화를 선물했는데, 엄마가 운동화 앞코를 눌러보시는 모습이 한국의 엄마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ㅡ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아이들을 만났던 순간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그 다음은 풍선아트 활동으로 아이들에게 풍선 모자, 풍선 칼 등을 만들어줬을 때다. 나무 그늘 아래 온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었는데 딸과 제가 풍선 칼을 만들어 한 아이에게 선물하자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후 정신 없이 풍선 칼을 만들어줬는데, 어느 순간 풍선 칼을 들고 풍선 모자를 쓴 아이와 어른들이 모두 신이 나서 다같이 춤을 췄다. 별것 아닌 풍선 하나로도 이렇게 기뻐하고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고 나눌 줄 아는 잠비아 사람들이 순간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ㅡ잠비아를 다녀온 후 새롭게 결심했거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11학년인 루스의 공책에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수학 공식과 풀이 과정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제가 그간 '아프리카 같이 열악한 환경의 학교에서 얼마나 수준 있는 내용을 가르치겠나' 하며 은근히 무시해왔다는 걸 낯뜨겁게 깨달았고 저의 오만함과 편견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루스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루스를 계속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해지는 순간이었다. '비전로드'를 통해 깊이 깨달은 게 있다면 아프리카의 경제적 수준이 낮다고 학습 능력이나 수준도 낮은 게 절대 아니라는 점, 아프리카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꿈꾸는 아이들과 열심히 일해서 얻은 성취에 자부심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ㅡ아동에게 혹시 못다 전하고 온 이야기가 있다면.
▲많이 보고 싶을 거라고, 꼭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못 해준 것 같다. 사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너무 아쉬운 마음에 제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왔는데, 언젠가 루스가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 잊지 않고 연락을 해준다면 꼭 도움이 돼주고 싶다.
ㅡ후원을 망설이고 있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추천 메시지는.
▲'비전로드'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사실 저도 월드비전이 하는 일들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후원 아동을 연계해주고, TV에서 본 것처럼 '우물파기' 같은 사업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현지에서 직접 느낀 것은 월드비전이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고 너무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 필요한 건물을 지어주고 학용품과 컴퓨터 등 물품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다양한 클럽 활동 등을 지원해 아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셨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져본다.
ㅡ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함께 다녀온 우리 딸 영서에게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에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잘 참아줬을 뿐 아니라 여러 사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긴 시간 설명을 들었는데, 열심히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모여라 놀이 등 일일 교사 활동과 미리 배워갔던 풍선 아트를 아이들에게 함께 만들어 나눠주었던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경험이 딸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아서 삶의 고비마다 힘이 되길 바란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