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의 국내정치서 벗어나는 지혜 발휘해야
2023.08.08 06:00
수정 : 2023.08.08 09:05기사원문
그런데 한국정치도 신냉전처럼 이슈의 해석과 접근방식이 양분화되는 모양새가 또렷하다. 우선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국익적 접근 진영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모범국가로서 북한 인권 개선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내재적 접근 진영은 북한 인권을 세계 다른 곳의 인권과 별개의 것으로 특수화시킨다. 하지만 북한 인권과 인류 보편적 가치를 구분하려는 내재적 접근방식은 그 모순성 때문에 대북 저자세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8월 15일 광복절이 다가오면서 한국정치에 또 다른 양분화의 의제인 건국절 논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방에서는 건국이 1948년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일방에서는 1919년이라고 강변한다. 전자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1948년 8월 15일이 실체가 있는 건국일이라는 논리이고, 후자는 1919년 3·1운동 후인 9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족했기에 건국은 1919년에 시작되었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란을 푸는 것은 역사적 접근도 있을 수 있고, 헌법 등 법적 해석이 기초한 법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건국 판단은 이러한 접근보다는 정치적 접근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17년 8·15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언급하면서 이 이슈가 크게 정치화된 바 있다. 이 논란의 근본적 배경 중 하나는 국익적 접근 진영과 내재적 접근 진영의 해석이 다른 것에 기인한다. 그런데 내재적 접근 진영 일부가 독립정신과 철학을 그들만의 것으로 사유화하려 하면서 건국에 대한 합리적 판단이 저하되는 악순환에 내몰리기도 한다.
내재적 접근 진영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공산국가 북한과의 극단적 대결에 있었다는 사실과 그 주축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에 거부감부터 발동되는 듯하다. 동시에 내재적 접근 진영은 1919년을 건국의 해라고 주장하면서 그들만이 독립운동세력의 직계 후손이라는 식으로 규정하면서 국익적 접근진영을 친일세력이라고 매도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독립운동이라는 숭고한 정신을 정치적 셈법화하고 심지어 사유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 진영만이 독립운동에 대해서 말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모습은 심지어 독립정신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독립정신의 사유화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건국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사실 1919년과 1948년은 모두 의미가 있다. 1919년은 독립정신과 주권을 향한 한국인의 집념과 용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지적’ 건국이고, 1948년은 한국 정부가 주권적 지배권과 법 제정·집행권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실체적’ 건국이라 볼 수 있다. 또한 1919년은 대한민국 건국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자긍심의 해이고, 1948년은 건국이 제도적으로 완성된 해이다. 1919년은 건국의 ‘과정’이고 1948년은 그 과정의 ‘최종상태’인 것이다. 과정 없이는 결과도 없다. 따라서 1919년과 1948년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이러한 상호성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가 더욱 빛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성이 정치적으로 탈색되면서 건국절이라는 단어에 부정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하는 것은 올바른 모습도 아니고 국력 소모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글로벌 중추국가(GPS·Global Pivot State)를 지향하는 한국의 대외전략은 보편적 가치와 같은 절대이익의 확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신냉전의 양분화를 완화시킬 잠재력이 있다. 이제는 신냉전의 국내정치 양분화도 완화되어 선진강국으로서 여정에 더욱 박차를 기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국내에서 모든 이슈가 정치적 진영화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경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