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성매매범에 집유… 돈으로 감형 받아내는 '공탁'
2023.08.09 17:57
수정 : 2023.08.09 17:57기사원문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도 가해자가 법원에 공탁금을 낼 수 있게 되면서 공탁제도가 이른바 '꼼수 감형'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탁금을 내는 행위 자체가 피해 회복을 위한 가해자의 노력으로 인정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에 형사공탁 특례제도 시행 이후 공탁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더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례제도에 따라 가해자들은 피해자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알지 못해도 사건번호만으로 공탁금을 낼 수 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 개인정보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지만 피해자 합의 없이 감형 받기 쉬워진 셈이다.
■ 매년 공탁금 규모 10조원 안팎
9일 법원통계 월보에 따르면 매년 법원에는 10조원 내외의 공탁금이 납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10조9910억6801만0774원이, 지난 2021년에는 10조3940억5495만5597원, 2020년에는 10조3980억7069만499원이 납부됐다.
문제는 피해자가 합의를 원치 않는데 공탁이 이뤄지면 감형이 될 수 있는 점이다.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공탁이 있으면 피고인 측의 합의 의사는 있었다고 판단하면서 감형할 수도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9일에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 정보를 몰라도 공탁을 할 수 있는 특례 제도가 생겨나면서 공탁 납부금액이 급등했다.특례 도입 직전인 지난해 11월에는 한달간 납부된 공탁금이 8991억2332만5671원이었지만 지난해 12월에는 1조1810억3183만2254원이, 지난 1월에는 1조2118억8428만3101원으로 납부됐다.
초등학생과 성관계한 성인남성 6명에 대한 춘천지법 강릉지원의 판결 또한 공탁이 이뤄진 점이 반영됐다. 지난 7일 강원아동청소년인권지원센터 등 인권단체는 해당 판결에 대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초범에 서로 합의하고 거금의 공탁금을 걸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준 것은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심지어 합의하지 않은 피해 아동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데도 관대한 형을 선고한 것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당성을 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몰래 선고 직전 '기습 공탁'
감형만을 노려 기습 공탁 하는 사례도 있다. 합의 없이 가해자가 선고 직전에 공탁하면 피해자는 알기 어렵고, 법원에 가해자 엄벌 탄원 등의 의견을 낼 여유도 없다. 온라인 성범죄피해자 커뮤니티에는 기습공탁이 걱정된다는 글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검찰도 기습 공탁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3월 "선고 직전 기습적으로 공탁이 이뤄지면 검찰이 변론재개를 통해 방지하라"는 지시를 전국 검찰청에 내렸다. 공탁이 그대로 반영돼 선고되는 것을 막고 검찰이 공탁에 대한 피해자의 의사와 공탁이 이뤄진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게 양형의견을 개진하라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검찰에서 변론재개요청을 해도 재판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영되지 않는다"며 "법원은 공탁이 들어왔을 때 당사자, 특히 검사에게 즉시 알리고 변론 재개가 필요하다면 받아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