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세 글자… 말할 수 없는 슬픔의 다른 이름
2023.08.10 18:12
수정 : 2023.08.10 18:12기사원문
우리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항일 저항시인은 얼마나 될까. '님의 침묵'을 쓴 승려이자 민족운동가 한용운, '광야'와 '청포도'의 이육사, '그날이 오면'의 심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벌(罰)'을 통해 서대문형무소를 그렸던 김광섭, '서시'와 '별 헤는 밤'의 윤동주가 있다.
저항시의 수준에 앞서 그 희소성을 더 유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는 것은 그 이름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 없는 물리적 억압을 상징한다. 마침내 봄날이 도래하여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그날에 대한 소망은, 철혈의 가슴을 가진 투사에 못잖은 호소력으로 민족의식을 환기한다.
항일저항시집을 꾸리는 이들은 답답하여 여기에 김소월을 포함하기도 한다. 상실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 고유의 민족어와 음률을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풀어낸 소월의 시는, 구구절절 절창에 이른다.
그의 '옷과 밥과 자유' 같은 시에 일말의 저항적 요소가 보이기는 하나, 본격적인 저항시라 지칭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언어가 곧 민족정신을 담는 그릇이요 그 현양(顯揚)의 가장 탁월한 방안이라 할 때 한국 시사에서 소월을 건너뛸 일은 없다.
'진달래꽃'이나 '산유화' 같은 시들은 그냥 읽기만 해도 가슴 한구석이 깊은 감회에 젖는다. 그의 시어 하나하나가 이토록 심금을 울리는 명편이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인 저항시의 이름을 내걸 수는 없는 터이다.
윤동주 사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1977년 10월, 일제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에서 발행한 '특고월보' 1943년 12월분이 밝혀지면서, 윤동주와 송몽규의 죄명과 형량이 알려졌다.
두 사람의 혐의는 '독립운동'이었다. 5년 후인 1982년 8월, 교토지방재판소의 판결문 사본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의 옥사에 관한 사건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윤동주에게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참으로 문약한 한 청년시인이 강철 같은 정신으로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은, 그 역사적 현실이 윤동주였다. 초간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에서 정지용이 쓴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횡행하던 시대에, 그의 시와 삶은 '부끄럽지 않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것이었다. 정지용은 이렇게 덧붙였다.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윤동주의 시 정신은 크게 네 개의 주제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먼저 어린 시절 습작기로부터 그 생애를 일관한, '순수 서정'의 정신이다. 또 인문학적 사고로 자신을 단련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각성한 '자아 성찰'의 정신, 성장하면서 학습 과정에서 접한 종교적 영향으로, 올곧은 '기독 신앙'의 정신이다.
마지막으로 민족공동체의 현실에 대한 울분을 내면화하면서, 저항의 의지를 담은 '나라 사랑'의 정신이다. 모두 100편이 넘는 윤동주의 시를 통독하다 보면, 이 네 가지 정신이 자연스럽게 감동적으로 전달되어온다. 그 시들 가운데는 미처 발화하지 못한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응결돼 있다.
나에게 있어 목자 시인 소강석의 시와 산문은 윤동주와 같은 울림을 준다. 순수한 서정적 감성, 끊임없는 자아 성찰, 뜨거운 신앙, 그리고 생사의 갈림을 두려워하지 않은 나라 사랑의 시혼(詩魂)에서 윤동주와 소강석은 놀랄 만큼 서로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부제로 '윤동주와 소강석'이란 부제를 붙였다. 윤동주의 생애와 문학, 현단계에 있어서 윤동주 문학의 의의와 주요 시들의 고찰, 의의를 탐구했다. 이에 덧붙여 소강석 시인의 '다시, 별 헤는 밤' 같은 시를 수록해 윤동주를 다시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봤다.
윤동주라는 익숙한 이름이 말할 수 없는 슬픔이나 아픔의 다른 이름이라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나에게만 그러한 것은 아닐 테다. 다양한 책이나 공연, 심지어 영화로 각색되며 다양한 시각으로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왔다. 이 시기, 윤동주를 다시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