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신 죽여줘"...승낙살인죄란

      2023.08.17 15:21   수정 : 2023.08.17 15:2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인에게 수억원의 투자 사기를 당한 충격에 20대와 10대 두 딸을 살해하고 극단선택을 했다가 홀로 살아남은 친모에게 승낙살인죄가 인정됐다. 부모가 어린 자녀와 함께 극단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서 법원은 왜 이 어머니에게 승낙살인죄를 인정했을까.

촉탁·승낙살인죄는 본인에게 의뢰 또는 승낙을 받아 그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로 동의살인죄라고도 불린다. '차라리 죽여 달라'는 부탁을 못이겨 살해했다면 촉탁살인, '나 대신에 죽여 달라'는 말을 듣고 살해했다면 승낙살인이다.



다만 이 같은 살해에 대한 촉탁 또는 승낙은 일시적인 기분이나 농담에 의해서는 할 수 없고, 본인의 진지한 요청에 의한 것이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의 살인죄가 성립된다.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는 보통 살인죄에 비해 형이 가볍다. 살인죄나 존속살해죄의 양형 기준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내지 7년 이상이라면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는 법정형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다.

논란이 되는 안락사도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의 한 형태다. 불치병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하던 환자가 그 고통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죽여달라'는 요구 끝에 살해 행위가 이뤄지는 '안락사'는 형식상으로는 동의살인죄로 분류된다. 촉탁·승낙살인죄는 미수범이라도 처벌 대상이다.

앞선 사건에서 A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에게 4억여원의 투자 사기를 당했다. 앞으로의 생활이 급격히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두 딸들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는 키울 수 없다고 판단되자 딸들과 함께 극단선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지난해 3월 전남 담양군 인근 차 안에서 두 딸을 살해한 뒤 자해했지만 홀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두 딸들의 나이는 만 24세, 17세였다.

아직 미성년이었던 둘째딸의 경우, 1심과 2심, 대법원 모두 살인죄를 인정했다. 다만 성인이었던 첫째 딸은 최종적으로 승낙살인죄가 적용됐다. 극단선택 결심을 밝힌 엄마에게 거듭 '자신도 따라가겠다'는 의사를 밝힌데다, 사건 당일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보면 차량에 타기 전부터 죽음을 이미 결심한 상태로 급격한 감정 동요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건 장소까지 스스로 운전을 했고 만 24세의 성인으로서 스스로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였다는 점도 법원 판단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승낙살인죄 요건은 매우 엄격하다. 형법 제252조(촉탁.승낙에 의한 살인 등) 제1항에서 '승낙'은 하자 없는 자유의사에 따라 진지하고 종국적으로 표시되어야 하고, 일시적 감정이나 교란 상태에서 한 승낙 등 그 승낙이 진지하고 종국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2월 서울 은평구의 자택에서 뇌경색 투병 중인 아버지를 살해한 30대 남성에게는 촉탁승낙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B씨는 8개월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간병하며 생활하다 결국 살해했다. 그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간병을 했지만 생활비가 떨어지자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법정에서 아버지가 이전부터 "죽고 싶다. 죽여 달라"고 말하면서 목에 끈을 묶는 등 극단선택 시도를 했다며 촉낙·승낙에 의한 살인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시적 기분이나 격정 상태에서 이뤚니 의사표시는 촉탁 내지 승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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