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는 '재미없는 사과’가 아니에요
2023.08.24 18:11
수정 : 2023.08.24 18:11기사원문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카페가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쓴 안내문을 두고 네티즌들이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라는 반응을 보였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우선 인쇄매체보다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동영상은 시청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색감과 감각적인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어떤 말이나 글을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느낌대로 의미를 파악하고 만다. 이에 더하여 우리말의 70%정도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는 데서 오는 혼동도 문해력 저하의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심심한 사과'의 경우에도 한자가 같이 표기됐다면 헷갈릴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문해력 향상은 사회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무척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학습, 학문 연구를 위해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국어 시수를 늘리는 등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문해력 저하의 주요 요인인 한자 교육 부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되고만 있는 실정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 '개판 오 분 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흡사 개들이 난리를 칠 것 같은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개는 죄가 없다. 개는 'dog'가 아닌 연다는 뜻의 한자 개(開)로, 판으로 된 솥뚜껑을 열기 오 분 전이란 말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난민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개판오분전"이라는 외침은 곧 뚜껑을 열어 배식을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굶주린 피난민들이 무질서하게 모여든 상황을 일컫는 말이었던 것이다.
우리말이 일본어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닭도리탕'이 그것이다. 과거 서울에서 학교 다니다 고향에 내려가면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식당의 닭도리탕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고향 친구들과 소주를 곁들어 닭도리탕을 안주 삼아 먹던 기억만 떠올려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도리(새)'가 일본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1992년 국립국어원은 순화 교시로 '닭볶음탕'이라는 말을 쓰도록 하고 있다. '도리'라 해서 무조건 일본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한 국립국어원은 너무 성급한 결정을 했다. 실상은 '도리'가 '도려내다'는 우리말에서 왔기 때문이다.
닭도리탕은 백숙(白熟)과 달리 온몸을 삶지 않고 칼로 도려내어 토막으로 요리한다. 굳이 도리가 일본어라면 새가 아니라 도루(とる 도려내다)라는 일본어에 해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으로 쓰는 말이다. 공통으로 쓰는 한국어와 일본어, 이를테면 해(日)와 히(日)와 같은 양국 공통어는 대개 한반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 초기에 문자를 사용하고 기록한 사람들은 대개 언어나 문화 등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자로는 도리(刀離), 즉 칼로 분리해낸다고 표기한다면 중국이나 일본 등 한자문화권의 관광객도 쉽게 닭도리탕(鷄刀離湯)을 이해할 수 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그 뜻을 제대로 모른 채 '감'으로 어휘를 선택해 실수하거나 상대가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고 말의 본질에 관해 생각해봐야 하지는 않을까. 단어를 통해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어원의 유래에서 다양한 스토리의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도록 노력해보자. 문장력과 문해력이 더 풍성해질테니 말이다.
김점식 인문교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