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소비·일하지 말라'가 日오염수 대비? 中매체 차단
2023.08.26 10:43
수정 : 2023.08.26 10:43기사원문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의 한 매체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비하자며 결혼과 출산, 소비와 일을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가 계정을 차단당했다. 인구 감소와 소비 부진, 청년실업률(16~24세)은 경기둔화에 직면한 중국 정부의 핵심 고민거리로 인식된다.
다음 세대 오염시키지 말고, 탕핑하자
26일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 매체 ‘왕이(网易)신문’은 최근 자국 동영상 공유 사이트는 빌리빌리에 “이웃나라가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을 감안해 우리가 일찍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4가지 조언을 올렸다.
1.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말자. 조국의 다음 세대를 오염시켜서는 안된다. 2. 재난에 대비해 더 많이 저축하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
3. 사람들은 아마도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집과 차를 사지 말라. 4. 가능한 한 집에서 탕핑(躺平·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아무런 저항 없이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사람)하고,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출근하지 않아도 문제없다고 왕이신문은 썼다.
왕이신문은 이 같은 문구를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 올린 이유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다만 왕이신문이 언급한 예들은 모두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중국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22년 기준 1.09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출생인구가 줄어들면 고령화는 가속되지만 노동·소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생산가능인구는 부족해진다. 경제의 대표적 장기적 악재다.
세계 1위 인구 대국 자리를 인도에게 내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 상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은 지방 정부별로 각종 출산율 높이기 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일부에선 법적으로 결혼 가능한 연령을 낮추자는 제안까지 하고 있다.
또 중국은 14억 인구의 내수 시장을 자랑하며, 타국을 압박하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제로코로나 폐기에도 좀처럼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대표적 소비지표인 소매판매는 7월에 2.5%에 그쳤다. 올해 들어 가장 낮다.
대신 소비자들은 불확실성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통장에서 잠자고 있는 자금을 시중으로 빼내기 위해 저축 금리를 인하하고, 거래소와 증권사 거래 수수료를 낮추며, 자동차·가전 할인에 나서는 등 소비 활성화 대책을 끊임없이 꺼내고 있다.
경제위기中 정부 대책과 역행
즉 왕이신문의 조언은 이런 중국 정부의 대책을 사실상 역행하는 문구들로 해석된다. 집을 사지 말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헝다(에버그란데) 이후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까지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가 줄줄이 무너지면서 금융권으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우려하기도 한다.
리창 중국 총리는 전날 국무원 상무회의를 주재하고 ‘보금자리 주택 계획 및 건설에 관한 지침’을 승인했다. 국무원은 “민생을 보장하고 개선하며 효과적인 투자를 확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의 안정적이고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고 부동산 산업 발전의 새로운 모델 구축을 촉진하는 중요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탕핑족을 언급한 것은 중국의 최대 고민거리인 청년실업률과 관련이 있다. 중국 정부는 6월 기준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대인 21.3%를 기록한 이후 7월부턴 더 이상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매년 1000만명의 대학졸업자가 나오고 도시 실업률도 0.1%p 오르는 등 더욱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사회 동요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관영 매체는 청년들에게 ‘농촌으로 가라’고 독려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쉽고 편한 일만 찾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중국 당국은 국영기업과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에게 고용 확대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리 선생님은 당신의 선생님이 아니다’ 이름의 사용하는 유명 네티즌은 X(옛 트위터)에 “'왕이뉴스는 합리적인 제안을 했지만 결국 슬프게도 차단됐고, 관련 댓글은 웨이보에서 표시되지 않고 있다'고 썼다"고 자유시보는 덧붙였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