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돈 풀어 '불황 늪' 탈출… 25년만에 韓 성장률 앞지른다
2023.08.27 18:48
수정 : 2023.08.27 18:48기사원문
■연 6% 성장 가능, 25년 만에 韓 추월 기세
27일 일본 정부 및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한국을 앞서고 있다. 현 추세라면 25년 만에 한국은 일본에 역전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일본 내각부는 올해 2·4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1.5%(속보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4분기 한국의 GDP 성장률(0.6%)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올해 1·4분기에도 일본은 0.9% 성장, 한국(0.3%)을 앞선 바 있다. 일본 경제는 지난해 4·4분기부터 3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어갔다.
25년 전 성장률이 일본에 뒤진 1998년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시기였다. 일본 경제가 2·4분기와 같은 추세로 1년간 성장할 것으로 가정하고 산출한 연간 환산(연율) 성장률은 6.0%에 달한다.
일본 경제성장의 견인차는 엔저와 수출 증가다. 한때 일본의 무역수지는 만성적자가 당연한 시절이 있었다. 일본은 이를 해외법인 배당 등으로 얻는 소득수지로 경상수지 흑자를 겨우 유지해왔다.
하지만 엔저는 일본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질 좋고 값싼 일본 제품은 전 세계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일본의 2·4분기 수출은 전 분기보다 3.2% 늘었고 수입은 4.3% 줄었다.
2·4분기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2·4분기의 70% 가까이 회복했다. 현지 공영 NHK는 "반도체 부족 문제가 누그러들면서 자동차 수출이 늘었고, 통계상 수출로 잡히는 외국인 여행자의 일본 여행도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中→日 아시아 머니무브 시작됐다
일본 증시에도 돈이 몰렸다. 해외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지난 5월 닛케이평균주가는 33년 만에 3만3000 선을 돌파했다. 닛케이지수가 3만3000 선을 넘긴 것은 '버블경제' 시기인 1990년 7월 이후 처음이다. 현재는 3만1000~3만2000 선에서 숨을 고르는 형국이다. 일본 증시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은 6년 만에 중국 증시를 앞질렀다. 외국인투자자가 중국 증시보다 일본 증시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한 건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 아시아 시장 펀드인 알리안츠오리엔탈인컴은 중국 투자비중을 지난해 말 16%에서 지난 6월 8%로 절반으로 줄였다. 그 대신 일본 투자비중은 25%에서 40%로 확대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과 홍콩 증시에 '비중 축소' 의견을 냈다. 반면 일본 증시에 대해선 글로벌 주식 '최선호주'(톱픽) 의견을 유지했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쓰비시, 이토추, 마루베니, 미쓰이, 스미토모 등 일본종합상사 5곳의 지분을 평균 8.5%까지 높였다.
버핏은 4월 일본을 방문해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50년 후 일본과 미국은 지금보다 성장한 나라가 돼 있을 것"이라며 "일본 상사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 아니 영원히 살아남을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부동산 업계도 들썩거리고 있다. 일본 부동산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일본 도쿄의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1억2960만엔(약 11억7435만원)으로 올해 상반기 60% 급등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시작한 1973년 이후 최고치다. 일본 수도권으로 분류되는 도쿄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신축 아파트 평균가도 8870만엔(약 8억374만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약발 먹힌 돈풀기, 익절 타이밍 재는 日
엔·달러 환율은 지난해 10월 말 32년 만에 150엔을 돌파한 후 외환당국의 개입 등으로 다시 내려왔으나 7월 말까지 8.5% 상승하는 등 주요국 중 가장 큰 폭의 통화 약세를 나타냈다.
6월에는 원·엔 재정환율이 100엔당 897.49원까지 떨어졌다. 원·엔 환율이 800원대로 내려간 것은 2015년 6월 25일 이후 8년 만이다.
코로나19 시기 유례없는 물가상승에도 일본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했다. 코로나 당시 소비진작을 위해 무리한 돈풀기 정책을 썼던 주요국들은 지난해부터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렸다.
그러나 일본은 기존 정책을 유지했고, 이는 엔저를 더욱 부채질했다. 올 들어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4%대를 기록, 긴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게 일본은행(BOJ)의 공식 입장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이 실현되면서 기업 부문의 투자의욕이 조성되고 있다"며 "디플레이션 경제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도전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통화곳간의 키를 쥔 BOJ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일부 수정하면서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BOJ는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했지만,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 폭 상한을 0.5%로 유지하되 시장 동향에 따라 이를 어느 정도 초과해도 용인하기로 했다. 시장에선 이르면 하반기 BOJ가 정책 변화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물가가 목표치인 2%를 넘긴 해도 안정적으로 앞으로도 2%대를 유지할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초저금리를 당분간 이어가겠다"고 일축했다.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