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모로코 강진, 안일한 대응으로 피해 커져
2023.09.10 15:39
수정 : 2023.09.10 15:39기사원문
120년만 규모 6.0 이상 강진
대서양과 지중해의 경계에 위치한 모로코에선 지난 8일 오후 11시 11분(현지시각) 무렵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했다.
모로코는 지구의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경계에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종종 지진이 관측됐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경계 지역에서 아프리카판 방향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진앙지는 마라케시 서남쪽 약 71km 떨어진 아틀라스 산맥이었다. 전문가들은 지하 역(逆)단층에서 지진이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일반적인 정(正)단층은 단층면 기준으로 위쪽의 지반 덩어리가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지만 역단층은 반대로 위쪽의 지반 덩어리가 아래쪽을 타고 올라간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 진앙 500km 이내에서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경우는 1900년대 이후에 약 12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번 지진은 지하 약 19km라는 비교적 얕은 지점에서 발생하여 피해를 키웠다. 또한 지진 발생 시간이 야간이라 대피 및 구조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IFRC)은 9일 발표에서 올해 초 튀르키예나 시리아 지진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 수습에도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외신들은 이번 지진이 갑작스레 발생했으나 앞서 예방할 기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1960년 모로코 남서부 항구도시인 아가디르 인근에서는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약 1만2000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숨졌다. 2004년에도 모로코 북동부 도시 알호세이마 부근에서 발생한 규모 6.4의 지진으로 628명이 사망했다. 모로코 정부는 건축법 개정에 나섰으나 오래된 도시 건물과 산악지역의 낙후된 건물들은 여전히 진흙벽돌로 지어진 상태였다.
마라케시에서는 8일 지진 이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메디나 시가지가 일부 무너졌고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도 손상됐다.
"정부 대응 굼뜨다" 비난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의 대응이 너무 느리고 굼뜨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원조를 위해 "모로코 당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외에 프랑스, 중국, 우크라이나, 러시아, 인도, 일본 정상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과거 모로코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는 200만유로(약 28억6000만원)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역시 구호대 265명과 텐트를 1000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는 이미 현장 지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모하메드 6세는 공식적으로 해외에 구호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국의 구호 제의에도 명확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정부는 9일 국왕 주재로 긴급 회의를 마친 뒤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모로코 정부는 성명에서 "국왕은 이 비상한 상황에 애도와 연대, 지원 의사를 표명한 모든 형제·우호 국가들에 사의를 전했다"고 밝혔다.
미 지질조사국 '적색경보'로 조정
한편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0일 펴낸 새 보고서에서 지난 8일 밤늦게 모로코 역사도시 마라케시 남서쪽 약 75㎞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6.8 지진의 인명피해 및 경제 타격 추정치 관련 평가를 모두 '적색경보'로 조정했다.
지진 직후 인명피해 수준을 두 단계 낮은 '황색경보'로, 경제타격의 경우 이보다는 한 단계 높은 '주황색 경보'로 각각 판단했던 것에서 상향한 것이다.
USBS는 이번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000∼1만명일 가능성이 35%로 가장 높다고 봤다. 그러나 1만∼10만명에 이를 가능성도 21%로 전망했고, 10만명 이상이 될 경우의 수도 6%가량 되는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 측면에서는 10억∼100억달러(약 1조3370억∼13조3700억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37%로 평가됐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