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에서 '정신질환' 감경 얼마나…1년간 판결문 살펴보니
2023.10.01 15:30
수정 : 2023.10.01 15:3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최근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묻지마 살인' 사건 피의자들이 피해망상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감경을 노린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재판에서 정신질환이 감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정신질환' 살인·살인미수 36건 중 19건이 '심신미약 감경'
1일 파이낸셜뉴스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에서 최근 1년간 '정신질환', '정신장애', '망상', '조현병' 키워드로 살인 및 살인미수(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포함) 1심 판결문을 검색한 결과, 36건의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정신질환으로 의한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대부분 여러 정신질환을 복합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특히 조현병이 19건(53%)으로 가장 많았고, 우울증, 망상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등이 뒤를 이었다. 이외에 공황장애, 알코올의존증 등도 있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 중 절반 이상인 19건에 대해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형법 제10조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머지 17건의 사건에서는 정신질환이 심신미약 감경 사유가 되진 않았지만, 양형 사유에 반영되는 경우가 일부 있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도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려면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일례로 조현병을 앓다가 모친을 살해하려던 남성의 경우 14년간 입·퇴원을 반복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점, 약물 복용 중단으로 상태가 악화된 점 등으로 미뤄 심신미약을 인정받았다.
반면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다 지나가는 행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려 한 남성은 범행 당시 조현병을 앓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정도에 이를 수준은 아니었다며 감경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신미약 인정 드물어…조선·최원종, 감경 어려울 듯
법조계에선 정신질환이 심신미약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본다. 법원이 심신미약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데다 정신감정 등을 거쳐야 해서 정신질환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12월 형법 10조2항은 심신미약자의 행위를 '감경한다'에서 '감경할 수 있다'로 개정되기도 했다.
정구승 법무법인 일로 대표변호사는 "정신질환을 주장하는 사건만 놓고 보면 심신미약 감경 사례가 꽤 많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전체 살인·살인미수 사건에서는 드물다"며 "거짓으로 정신질환을 꾸며낼 경우 법원에서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중형을 선고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림동 흉기 난동' 피의자 조선과 '서현역 흉기 난동' 피의자 최원종 역시 심신미약이 인정될 가능성은 적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이들은 현재 피해망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심신미약이 쉽게 인정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갈수록 엄격하게 판단하는 추세"라며 "조선이나 최원종의 경우 범행 당시 행동을 보면 사물 변별력이 없던 것으로 보이지 않아 심신미약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법관의 판단에 따라 양형에 차이가 있는 만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성진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박사수료·조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심신미약 살인범죄자의 양형 요인 분석' 논문을 통해 "심신미약 감경은 법관의 판단 차이에서 오는 양형 편차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해도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심신미약 인정에 대한 근거와 설명을 판결문에 적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