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서 산책도 못해"… 여전히 불안한 관악산 둘레길
2023.09.17 18:29
수정 : 2023.09.18 07:01기사원문
■"와이프 혼자 산책 못가게 해"
17일 기자가 찾아가 본 관악산 생태공원엔 인적이 드물고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둘레길 입구에는 '2인 이상 동반 산행 바랍니다'라는 권고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등산로 아래 공원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건 이후 인적이 뚝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아내와 산책을 나온 50대 노모씨는 "사건이 일어난 후 와이프 혼자 산책을 못 가게 한다"며 "좋은 산책길인데 안타깝다"고 했다.
인근에서 30년 이상 거주했다는 전모씨(69)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공원을 찾지 않다가 이날 처음 왔다. 전씨는 "맨날 놀러 다니던 길인데 소식을 듣고 놀라 1달 만에 왔다"며 "그래도 사람이 아예 없던 길은 아니고, 공원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정말 오늘은 찾아보기 힘들고 음산하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직접 둘레길을 따라 걸어간 약 30분 동안 단 3명의 주민만 만날 수 있었다. 모두 60대 이상의 노인이었다. 매일 반려견과 둘레길 트레킹을 한다는 60대 박모씨는 "인적이 3분의 1로 줄었고, 최근 한 달 동안 젊은 사람은 아무도 못봤다"며 "연세 드신 분들도 무섭다며 삼삼오오 모여서 산책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둘레길 피하는 시민들
특히 2030세대의 여성들은 "마음 놓고 산책할 수도 없다"며 불안해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여성 직장인 이모씨(28)는 "최근에는 대낮에 공원을 산책하는데 인적이 없어 무서운 마음에 빨리 빠져나왔다"며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많은 또래 여성들이 트라우마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달 21일부터 운영해 온 '관악산 산악순찰대' 활동을 지난 15일 종료했다. 사건 발생 이후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순찰대는 관악서 관할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지원받은 경찰관 10명으로 구성됐다. 순찰대는 2명이 조를 이뤄 관악구 내 둘레길 약 14km 구간을 순찰했다.
인근 주민 70대 김모씨는 "경찰이 간간이 보여 안심됐다"라고 했다. 하지만 주민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대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악구 뿐만 아니라 관내에 둘레길이 있는 다른 경찰과 지자체도 주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강구에 나서고 있다. 관내에 21개의 둘레길이 있는 서울 구로경찰서도 경찰관이 직접 순찰을 다니며 폐쇄회로(CC)TV 미설치 지역이나 치안 취약 지역을 점검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이곳이 너무 불안하다, CCTV좀 설치해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지자체 등과 협력해 주민 불안 해소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관악구는 전직경찰관 50명을 숲길안전지킴이로 채용해 지난 1일부터 공원 8개소와 7개 노선 등을 순찰중이다. 관악구는 내년까지 등산로 등에 250개의 CCTV를 설치하기 위해 위치선정작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