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병에 6900만원 와인의 맛은 어떨까? : 1화

      2023.09.21 05:00   수정 : 2023.09.21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살면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비싼 음식은 뭘까?
아마 지난 5월에 먹은 1병에 100만원이 넘는 와인이지 싶다. 스타필드 하남 지하1층에 국내 최대 규모의 와인 매장으로 문을 연 '와인클럽'에서였다.

매장 내에는 데일리 와인부터 값비싼 와인까지 시음을 해 볼 수 있는 '테이스팅 존'이 마련돼 있었다.

거기서 1병에 약 140만원 정도 하는 '샤또무똥로칠드 2009'와, 120만원 정도인 '샤또마고 2012'를 시음했다. 소주잔보다 작은 30mL를 시음하는데 각각 6만원과 5만원이 책정돼 있었다.
1mL 단위로 가격을 책정하고 충전카드에서 금액을 차감하는 방식이었는데 1mL(1g)당 가격이 2000원과 1666원이었다.

100만원 넘는 와인의 맛은?

두 와인 모두 30mL 정도를 시음해 봤다.

그에 앞서 한 병에 몇 만원 하는 데일리 와인도 여러병 시음했다. 1병당 100만원이 넘는 와인의 맛은 솔직히 말해 별로 특별할 것은 없었다. 개인적인 느낌은 두 와인 모두 일반적인 데일리 와인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더 저렴한 와인과 비교해 액체의 질감이 가벼운 느낌, 바디감이 적은 듯한 느낌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10여년 전 '2% 부족할 때'란 음료를 처음 먹고 '뭐지 이 과일 씻은 듯한 싱거운 맛은'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여행 기자를 하며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해창주조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해창 막걸리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생 막걸리'라고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알코올 도수에 따라 18도, 12도, 9도 등 다양하다. 12도짜리는 1만6000원 정도에 구매가 가능하지만 18도는 소비자가가 13만5000원에 달한다. 식당에서 먹으면 20만원 가까이 나가는 막거리계의 샤넬 같은 놈이다. 막걸리의 전체적인 맛은 여러번 덧술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포도당이 생겨서 매우 달달하고, 참외 향이 나는 걸쭉한 느낌이었다.


주조장에서 눈을 가리고 해창 막걸리를 블라인드 테스트 해봤다. 18도 짜리와 12도 짜리는 가격 차이가 10배 가까이 났지만 맛에서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18도 짜리 해창막걸리가 12도 짜리 막걸리에 비해 훨씬 더 가볍고 깔끔한 맛으로 느껴졌다. 도수가 높은 만큼 훨씬 더 묵직한 맛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다.

해창막걸리와 샤또 와인의 경험을 통해 기자에게 '비싼 맛'은 '가볍고 투명한 맛'이라는 '후입견(선입견의 반대)'이 생겼다. 찐 부자들은 명품의 로고를 가린다고 하던데 '부자의 맛'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보다 은은하게 풍기는 어떤 아우라가 있는 것인가 싶었다.

내 맘대로 만든 '10의 법칙'

필자는 무언가의 가격을 측정하거나 가늠하고 평가할 때 '10의 법칙'이라는 내면의 가이드가 있다.

'10의 법칙'은 대략적으로 '무언가의 가격이 일반적인 평균보다 10배 가량 증가할 때는 만족도(가성비)도 비례해 상승하지만 10배를 초과하면 거기서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동대문에서 살 수 있는 일반적인 손가방의 가격이 5만원이라고 하면, 대충 50만원까지는 가격이 올라 갈 수록 품질도 좋아진다. 인조 가죽 대신 천연 가죽을 쓰거나 바느질이 꼼꼼하다든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50만원을 넘어 500만원이 되는 가방이라면 품질과 가성비의 영역을 넘어 버린다. 샤넬이니 에르메스니 하는 사치제의 가방은 본래 그것의 목적이 아닌 희소한 소비 욕구 충족과 과시욕 등 전혀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끼에 1만원 하는 국밥과 10만원 하는 한정식은 만족도에서 차이가 크지만 한 끼에 100만원 하는 송로버섯과 샥스핀, 캐비아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하남의 와인클럽에서 봤던 최고가 와인은 1병에 6900만원이나 하는 'DRC 로마네 꽁띠 그랑크뤼 2017'이었다.

해당 와인은 기자가 실물 병을 확인하고 몇 주 뒤에 한 손님이 현금으로 구매를 했다고 한다.
와인 1병이 보통 750mL이니까 1mL에 대충 10만원 정도 하는 가격(60mL는 서비스)인 셈이다. 말 그대로 '신의 물방울'인 셈이다.
잔에 따르다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치토스를 먹고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먹는 심정으로 테이블이라도 핥아야 할 가공할 만한 가격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6900만원이나 하는 'DRC...와인'의 맛은 어떨까?
(계속)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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