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가운데 야외 식탁… 금·토마다 펼쳐지는 ‘한우 야시장’

      2023.09.24 09:00   수정 : 2023.09.24 20:0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울산지역의 시장은 전통시장 45곳, 상점가 16곳 등 총 61곳이 운영되고 있다. 점포 수는 모두 합쳐 약 5100개, 여기에 종사하는 상인은 약 4500명에 이른다. 전통적인 상업도시가 아니었던 울산은 1960년 정부의 울산공업지구 개발과 함께 상업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출발이 늦어진 탓에 오랜 전통을 지닌 이름난 시장은 적지만 대신 문화, 관광, 역사 등 지역 특색과 연계하려는 특성화 사업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이 가운데 50년의 역사를 가진 울산 '수암시장'은 요즘 들어 울산을 대표하는 가장 '핫한' 전통시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울산 공업화와 함께 발달한 수암시장

수암시장은 야음동에서 분리된 울산 남구 수암(峀岩)동에 위치하고 있다. 야음(也音)은 '잇기 야(也)' 자와 같이 생긴 마을 뒷산에서 소리가 난다고 하여 '야음'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숙종 때 기록에 지명이 나타난다.

수암시장은 1970년초에 당시 야음동에 지상1층, 2905㎡의 상가 건물로 시작했다. 이후 주변에 점포가 늘어나면서 제법 큰 시장을 형성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점포수는 150여 개며, 주요 취급 품목은 농수축산물, 의류 등이다.

수암시장의 발전은 공업도시 울산의 태동과 맞물려 있다.

산업수도 울산의 태동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 지정과 함께 시작됐다. 이후 1970년대까지 철도, 항만, 교량, 공업용수 댐 등 기반 시설과 산업시설의 건설이 집중됐다. 대표적인 산업시설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조선소, 석유화학단지이다.

이와 함께 인구도 빠르게 늘어 신설된 신정동과 야음동 등의 인구는 기존 구시가지 수준으로 늘어났다. 외지에서 많은 노동력이 유입된 것이다. 이때 기업들이 직원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마련한 것이 사택이다. 석유화학공단과 인접한 야음동이 대표적인 사택 밀집 지역이었고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수암동에도 공단 직원들의 거주지로 대단위 아파트와 기업들의 사택들이 형성됐다. 하지만 새롭게 개발된 지역이다 보니 편의시설이 부족했다. 야음시장과 수암시장이 생격난 게 이때였다. 야음시장은 1976년 개설한 야음상가시장과 ㈜야음의 두 단체가 전통시장 등록돼 시장을 형성해 왔는데 최근 ㈜야음이 주상복합 건립과 관련해 자진 폐업하고 상인회도 해산해 전통시장에서 제외됐다. 야음상가시장만이 남아 있다.

그동안 수암시장과 함께 야음동 양대 전통시장으로 자리 잡아 왔던 야음시장이 이처럼 반 토막 나자 수암시장은 새로운 기회를 잡고 있다.

■국내 유일의 한우 야시장

수암시장은 그동안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객편의 시설 설치와 아케이드 개보수 등으로 시장 현대화를 추진해 왔다. 그러다가 한우를 앞세운 울산 최초의 야시장을 개장하면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고 외지 방문객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수암시장의 특성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즐기는 시장'이다. 즐기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먹거리와 맛을 보장하는 한우 야시장,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들이다.

지난 15일 저녁, 수암시장은 말 그대로 '불타는 금요일'이었다. 아케이드 거리 한 중간에 줄지어 차려진 식탁에는 1등급 한우 갈비가 빨갛게 피어오른 숯불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시장 안을 가득 메웠다.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연인, 할아버지와 아이들까지 함께 온 일가족이 한우 야시장 야외 식탁에 둘러앉아 한우 구이를 즐기고 있었다. 끝자리 식탁에서는 회사원 4명이 외치는 "원샷"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의 한우 구이가 유명한 것은 국내 유일의 한우 야시장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수암시장 곳곳에 자리 잡은 '식육식당+초장집' 형태의 한우 구잇집들이 생겨나면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식육식당의 한우 구이는 직장 회식이나 월급날 직장인들의 애환을 풀어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다고 품질을 의심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울주군 언양과 두동면 봉계가 국내 유일의 한우 불고기 특구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울산은 예로부터 한우와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지역 축산농가에서는 고품질의 한우를 생산하면서 관련 대회에서 자주 대통령상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울주군에서 생산된 한우 한 마리가 경매가 8177만원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수암시장은 무엇보다 품질 좋은 한우를 제공한다. 야시장이 서는 금, 토요일 아니더라도 평일에 얼마든지 시장 내 식육식당에서 한우 구이를 즐길 수 있다.

행정안전부 공식 8호 야시장으로 인정받은 수암시장 한우 야시장은 지난 2016년 4월 1일 개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3년을 쉬었다가 올해 봄 재개했다. 7~8월 혹서기에 잠시 중단했다가 9월 들어 하반기 운영에 들어갔다. 총 310m 거리에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51개 매대를 운영 중이다. 운영기간은 야외에서 시식이 가능한 11월까지 3개월 간이며 매주 금, 토 오후 7시~11시 열린다.

한우 야시장 이용은 아주 쉽다. 식육점과 가판에서 먹고 싶은 고기를 구입한 뒤 거리 한 가운데 차려진 야외 식탁에 앉으면 된다. 식탁은 1인당 5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밑반찬과 숯불, 석쇠 등 구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또 원하는 술을 제공하기 위해 아이스박스에 각종 술을 가득 담은 수레, 이른바 '술차'를 운영한다. 술차가 지나가면 원하는 술을 꺼내서 마시고 나중에 계산을 하면 된다.

한우 야시장라고 해서 한우 구이만 팔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야시장 메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잡채, 파전, 각종 튀김, 닭튀김, 큐브스테이크, 와플 등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함께 열리는 플리마켓에서는 아이들과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수공예품이 판매되고, 타로점도 운영된다.

이곳 야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매주 실력 있는 가수들이 출연하는 흥겨운 공연 무대다. 크게 신이 날 때는 관객과 가수가 어우러져 춤판이 벌어진다.

인근에서 전자제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전통시장이라면 으레 식재료가 중심이 되고 있지만 이곳은 완성된 제품을 파는 곳이 많다"라며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한 음식들이 많다 보니 젊은이들의 발길도 잦다"라고 말했다. 그는 "깨끗한 화장실과 백화점 주차장 부럽지 않는 최신식 주차장은 전통시장의 인식을 새롭게 바꾸는데 일조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끝없는 경쟁… 시장 디지털화 추진

수암시장의 인기가 높아지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약 2년 전 바로 옆에 '수암회수산시장'이 들어선 것이다.

수암회수산시장은 울산시민들이 애용하는 울산 농수산물시장 회센터처럼 활어회와 초장집으로 구성돼 있다. 울산 남구에서 공모한 '2023 골목형상점가 특화지원 사업'에도 선정됐다. 횟집과 초장집을 합쳐 38곳이 상가건물 1층, 2층에서 장사를 하는 제법 큰 규모의 현대식 수산시장이다. 최근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하지만 기존 수암시장 내 횟집들로서는 불쾌한 일이다.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쩌겠어요 단골손님들 믿고 장사해야지요." 그동안 수암시장에서 40년 동안 부산횟집을 운영해 온 여사장님의 말에는 섭섭함이 진하게 배어있었다. 하지만 4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쌓아놓은 신뢰는 무엇보다 큰 경쟁력이라며 자신하고 있었다.


수암상가시장 상인회 임용석 회장은 "현재로서는 상생하는 길만이 유일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라며 "수암회수산시장 상인회 회장과 늘 소통하며 계속해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덧붙여 수암시장의 발전을 위해 현재 상가 디지털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울산에서 가장 젊은 시장으로 평가되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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