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꿀 수 있는 세상 만들기

      2023.09.24 19:36   수정 : 2023.09.25 08:14기사원문

요즘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의 제목 하나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이것은 박완서 작가가 1989년에 발표한 소설인데, 이 제목이 "세상이 이 지경인데도 아직 꿈꿀 수가 있는가"라는 반어적 질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즘 언론을 통해 들리는 세상 소식이 너무나 어지러워서 우리 사회가 점점 낯설게 느껴진다.

부모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낯선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는 것이 이젠 일상이 되었다. 인간관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기가,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서로 존중하는 세상, 정이 넘치고 살맛 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난망인가.

우리나라는 불과 몇 십년 사이에 최빈국에서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하고, 문화적 변방에서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것은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교육열 그리고 잘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산업 발전과 무역입국의 기치 아래 이룩해낸 성과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과의 이면에는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기본권마저 유보당해야 했던 국민의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미래에 대한 희망 상실이라는 부작용도 겪고 있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가졌던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오히려 이렇게 잘살게 된 오늘날 잃어버렸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비관주의적 성향 증가와 인문학의 몰락은 묘하게도 비슷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인문학은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쓸모'를 따진 것이다. 기술개발에도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안 되고, 직업교육 기능도 미미하다고 본 것이다. 폐과가 속출하고 살아남은 학과도 통합의 대상이 되거나 인문학적 성격을 희석시키기 위해 명칭이라도 바꿔야 했다. 인문학은 사회적 관심도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오죽하면 '문송'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인문학은 고사하고 있는데, 그래서 우리 사회는 더 살기 좋아지고 있는가. 경제발전도 기술개발도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예전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가 됐고, 어렵게 이룬 부를 유지하기 위해 첨단기술 개발에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상당 부분을 투입하고 있는데,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있는가. 참고로 말하자면, 정부 R&D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1년 기준으로 1.2%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시 꿈꾸게 할 수 있을까.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수조원을 투입했지만 효과가 없는 것을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돈이 아닌 것 같다. 또 많은 복지예산을 투입해도 비관적인 현실관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결국 문학을 읽고 역사 이야기를 듣고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키움으로써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현실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제 고사 직전인 인문학의 '쓸모'를 다시 평가하고 인문학을 소환하여 국가전략의 바탕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고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난 6월 발의된 '인문사회학술기본법'을 통과시켜 인문학 부활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결국 다시 꿈꿀 수 있고 살맛이 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만 리까지 퍼진다는 인간의 향기, 인문학의 향기가 아니겠는가.

서울대 인문대학장

■약력 △61세 △서울대 독문과 학사 △서울대 대학원 문학석사 △독일 뮌스터대 철학박사 △서울대 기획부처장 △서울대 평의원회 환경문화복지위원장 △한국텍스트언어학회장 △한국독일어교육학회장 △IDS 국제학술위원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감사(현) △한국독어학회장(현)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현)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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