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래도 수술과 기피하는데”...수술실 CCTV 의무화 ‘의료공백’ 책임 누가지나
2023.09.25 15:26
수정 : 2023.09.27 21:18기사원문
[메디노트]는 국민건강과 직결된 의료계, 제약·바이오 업계 소식을 심층 취재하여 연재합니다. 9월 마지막 주는 ‘수술실 CCTV 의무화법’ 시행에 맞춰 의료계와 환자들의 생생한 의견을 2회에 걸쳐 전달합니다.
"외과에 관심 있어 면담하러 오는 후배들이 있는데, 수술실 CCTV에 관련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한다.
[파이낸셜뉴스] 25일부터 전신마취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경우에 수술실 내부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한 법안이 시행된 가운데, 이를 두고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수술실 CCTV 설치와 운영을 의무화한 개정 의료법을 25일부터 시행했다. 2016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다가 과다출혈로 숨진 고 권대희씨 사건 이후 7년 만이다. 이러한 조치는 수술실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2021년 9월 개정된 의료법에 따른 조치다.
해당 법안은 전신마취 수술을 받는 환자는 병원에 CCTV 촬영을 요구할 수 있고,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병원은 5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의료계 “국민으로서 직장에서 감시 당하지 않을 권리 있다”
해당 법안 시행에 관련해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의료계는 지난 5일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의사 등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일상적으로 침해해 각종 폐해를 야기하고 궁극적으로 환자에게까지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이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파이낸셜뉴스와의 통화에서 “기본적인 시민, 국민, 직업인으로서 일하는 직장에서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가 기본적인 인권상에 있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외과교수 “수술기피 더 심해질 것...전공의 수련은 또 어떻게 할건가”
의료계는 CCTV 설치 의무화로 인해 발생하게 될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인턴, 전공의 등 수련의들의 수술과 기피를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비수도권 대학병원 외과 A교수는 “실제로 외과에 관심이 있어 면담하러 오는 후배들도 있는데, 수술실 CCTV에 관련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한다”며 “CCTV가 없어도 많이들 (외과를) 꺼려하는데, CCTV가 설치됨으로서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다”고 밝혔다.
A교수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인해 대학병원에서 이뤄지는 전공의 수련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A교수는 “보통 대학병원은 교육수련병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련의들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잠정적인 동의가 있다”며 “예를 들면 교수가 옆에 있더라도 집도 자체를 전공의가 하는 경우가 교육 때문에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수술하는 자리에 전공의가 있고, 어시스트(보조)하는 자리에 교수가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도 환자가 나중에 문제를 삼는 등의 경우가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의협 부회장도 “위험한 수술 기피”.. 필수의료 공백 우려
박진규 의협 부회장 역시 비슷한 우려를 보였다. 박 부회장은 CCTV 설치 의무화로 인해 “의사들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수술, 위험할 것 같이 예상되는 수술을 기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련의들의 수술과 기피 현상은) 이미 심화됐다”고 짚었다.
박 부회장은 “CCTV 설치 의무화법이 통과됐을 때 외과 지원율이 많이 떨어졌다”며 “이것이 이슈화되고 언론에 많이 나오면 (기피 현상은) 더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회장은 수련의들의 수술과 기피 현상으로 생기는 필수의료 공백을 우려했다. 그는 “편안하게 돈 벌고 평생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과가 많다. 필수의료에 관련된 신경외과, 흉부외과, 일반외과, 소아과 등은 안 그래도 위험하다”며 “법적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고 CCTV까지 설치해서 감시한다고 하면 과연 어떤 의사가 (선택)할까. 수가도 차이가 없고, 내 자식이 한다고 해도 말릴 정도”라고 말했다.
“수술 정보는 환자의 가장 사적인 정보..유출이라도 되면 어떡하나” 지적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또 CCTV에 촬영된 영상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김 대변인은 “수술을 받을 때 환자들은 거의 나체상태로 수술방 CCTV영상은 특급 보안에 해당되는 개인정보인데, (의사들이) 보안전문 인력도 아니고 저장되는 정보의 보안과 관련해 의료계 내부적으로 보호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며 “영상이 퍼지면 삽시간에 퍼진다. 그런 부분들과 관련해서도 예방책이나 사후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건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박진규 의협 부회장 역시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와 전신마취하면 옷을 다 벗고 요도관을 삽입한다. 가장 사적인 부분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인데 이를 과연 저장하고 싶을까 생각이 든다”며 “영상을 열람한다고 했을 때 여럿이서 같이 볼 텐데 당사자면 절대 하고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의사 중 범죄자 있다...그러나 CCTV 설치는 초가삼간 태우는 격” 반발
수술실 CCTV설치 의무화의 배경으로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대리수술, 성추행 등 범죄행위가 꼽히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의사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를 막기 위해 CCTV 설치를 의무화 하는 것은 ‘벼룩을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의사 중에 범죄자 있다. 현재 활동하는 의사만 10만이 넘는데, 보도되는 마약 (처방) 의사, 카르텔에 들어가 있거나 조폭에 들어가 있거나 조폭에 연루된 의사들도 있다고 본다”며 “그런 의사들이 엄격하게 처벌을 받았으면 하는 의지에서 의협 스스로도 고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진규 의협 부회장은 “수술실 안에서 무면허 의료 행위라던지 성추행이라던지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사건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아닌데 전세계 유례 없이 CCTV 설치를 강제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 대학병원 외과 A교수 역시 “그동안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생각은 된다. 신뢰를 가지고 맞겨준 생명인데 편법을 저지르는 등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당연히 자체적으로도 징계를 강화해야 하고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전국적으로 모든 병원에 CCTV설치를 일괄적으로 의무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학병원이나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병원에서는 거의 10여명이 수술실을 드나들며 수술을 보고 배우고 한다. 일각에서 걱정하는 의료사고 은폐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짚었다.
한편 의협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할 방침이다. 기자회견에서는 수술실 CCTV 의무화와 관련된 의협 회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