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중독 진단

      2023.09.26 08:52   수정 : 2023.09.26 08:5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도박중독에 걸리는 계기는 대개 ‘초심자의 행운’이다. 도박을 접한 초반에 큰돈을 쥐게 되면 그때의 쾌감을 잊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질 때까지 돈을 걸어댄다는 것이다. 비단 도박이 아니어도 한 가지 방법에서 기대보다 훨씬 큰 성과를 취하게 되면 그 방법의 틀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게 마련이다.



2016년 12월 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애초 이 탄핵소추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잡은 정권교체 승기를 굳히고자 내놓은 정치적 제스처였을 터다.
보유의석이 120여석에 그쳤던 데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던 기억이 생생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라 아무리 국정농단 민심이 거세기로서니 설마 탄핵에 나설까 했을 것이다. 바른정당이 떨어져 나오는 데까지 이어진 보수분열 덕에 탄핵소추안은 덜컥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후 불과 92일 만인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인용 판결을 내렸고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민주당으로서는 이길 수밖에 없는 대선을 치르는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6년 전 잭팟을 잊지 못한 탓인지 민주당은 지금도 탄핵소추와 해임건의를 남발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에 이어 탄핵소추안, 헌정사 최초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현직 검사 탄핵소추안 등을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하지만 강제성 없는 해임건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별다른 공식입장도 내지 않은 채 무시했고, 이 장관 탄핵은 헌재가 기각했다. 국회의 권위는 그만큼 추락했다.

국민의힘은 이런 민주당에게 “탄핵중독”이라며 비아냥댄다. 그들은 과연 마음 놓고 비난할 처지일까.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이번 21대 국회 초기에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추 장관 탄핵소추를 재차 시도했고 이번엔 표결까지 진행했지만 부결됐다.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의석을 보유했는지만 다를 뿐 양당 모두 ‘탄핵중독’에 다름이 없다.
공통점을 찾자면 다들 야당일 적 탄핵을 남발했으니, 어쩌면 야당이라는 처지가 되면 중독에 취약해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