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빚투에 짖눌린 2030[뉴시스 창사 22년]
2023.09.27 08:00
수정 : 2023.09.27 08:00기사원문
[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직장인 정 모 씨(36)는 3년 전 부동산과 가상화폐 투자를 위해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으로 5억원을 대출받았다.
유행처럼 번졌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의 어두운 그림자가 2030세대에 드리워지고 있다. 이들은 초저금리 시대에 주변에서 부동산과 가상화폐 등으로 소위 대박을 터뜨린 것을 체감하면서 벼락거지를 면하기 위해 적극 투자에 나섰다. 결과는 불운하다. 금리는 올랐고 자산가치는 떨어졌다. 이자 부담까지 늘며 이들은 역대 가장 빚이 많은 청년층이 됐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 씨와 같은 30대 이하 대출 잔액은 지난해 은행권 354조8000억원과 2금융권 159조7000억원과 총 514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3년 전인 2019년 404조원과 비교하면 27.4% 급증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채시장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청년층이 빚 부담에서 해방되려면 소득이 늘거나 자산 가치가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위험도가 높은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는 되레 짐이 됐다. 글로벌 긴축 통화정책에 집값이 떨어지며 무리한 부동산 갭투자도 빚 부담을 높였다. 집값이 최근 반등했다고는 하지만 투자 당시보다 80%에 수준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고물가에 따른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들이 빚을 상환하긴 쉽지 않다.
청년들은 채무를 갚기 위해 또 다른 대출로 내몰려야만 했다. 지난해 말 30대 이하 다중채무자 수는 142만명으로 대출잔액은 157조원에 달한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빚을 낸 다중채무자는 지난해만 6만5000명 늘었지만, 대출 잔액은 2000억원이 증가한데 그쳤다. 이자를 갚기 위해 신규 대출이 늘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나마 은행을 들릴 수 있는 건 신용도가 높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담보나 신용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은 1금융 대출은 쉽지 않아 상대적으로 대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나 불법 사채 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했고, 돌려막기로 빚을 감당하지 못해 회생이나 개인워크아웃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20대 이하의 개인워크아웃 원금 감면자 수는 2018년 상반기 2273명에서 2022년 상반기에는 3509명으로 늘었다가, 올해 상반기에는 4654명으로 5년 내 상반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회생 신청자 중 20대 비중은 2020년 10.7%, 2021년 14.1%, 지난해 15.2%로 높아졌다.
청년층이 빚에 짓눌린 상황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성장 동력을 끌어내린다. 연체라도 하게 되면 정상적인 금융 서비스 이용이 어렵고, 회생이나 워크아웃 등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면 사회에서 낙오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2030세대의 경제 활동 위축은 결혼 기피와 저출산 등 세대 갈등과 각종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리한 대출과 투자가 문제다"면서 "일자리 부족으로 소득이 낮은 청년층이 빚을 갚지 못해 소비 부진은 물론 각종 범죄 등 사회 문제에 노출된다"고 진단했다.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가 반등세를 보이며 청년층을 또다시 빚의 세계로 유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 3804건 중 2030세대가 매입한 거래는 1423건으로 전체의 37.4%에 달했다. 아파트 매수세가 주춤했던 지난해 6월 24.8%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이들의 베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고금리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간담회에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다시 낮은 금리로 갈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샀다면 조심해야 한다"며 청년 빚투족에 경고장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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