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도덕과 돈
2023.10.09 18:41
수정 : 2023.10.09 18:42기사원문
이 판사에게 실드(방패)를 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다 같이 못살 때는 대법원장도 청렴해 보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잘살게 될수록 끝이 없는 인간의 물욕은 본모습을 드러낸다. 거기에 판사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판사의 보수는 같은 직급의 일반 공무원보다 더 많다. 평균 연봉은 올해 기준으로 9100만원 선이라고 한다. 대기업 연봉만큼은 된다. 고법 부장판사가 되면 차관 대우를 받는다. 월급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 박봉은 결코 아니다.
올해 재산신고에서 나타난 대법관들의 평균 재산은 22억6652만원이었다. 대법관이 되면 장관급에 해당하는 1억원대 중반의 연봉을 받는다. 일반인들로서는 꿈도 못 꿀 돈이다. 6년 동안 받는 봉급의 절반만 저축해도 서민 아파트 한 채는 살 돈이 된다. 퇴임 때 재산이 아파트 한 채 등 2억여원에 불과했던 조무제 전 대법관의 경우는 칭송을 받을 만하고 이해할 만도 하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김능환 전 대법관의 경우는 어떤가. 생활비가 모자라 부인이 편의점과 채소 가게를 운영하고 퇴직 후 거기서 일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인물이다. 억대의 연봉을 받고 국민연금의 두 배는 될 연금을 받을 터였는데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쇼'였다고 몰아세운다. 그는 불과 5개월 뒤인 2013년 8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며 대형 로펌에 들어갔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진보연(進步然) 하며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의 주심으로서 일본 전범기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한명숙 전 총리의 비리 사건을 수임한 그가 구광모 LG 회장의 상속소송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소추 및 심판을 맡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돈 앞에 장사는 없다'는 뜻일까. 그동안 맡은 사건만 100건이 훨씬 넘을 것이다. 한 건 수임료가 수천만원이라면 벌어들인 돈은 가히 짐작이 간다.
이균용 후보자의 재산신고액은 64억원이다. 많기는 많다. 고위 법관 143명의 평균 38억7223만원의 1.6배다. 최근 퇴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재산은 18억1000만원이다.
이 또한 서민들의 시각에선 적지 않다. 실제 시세로는 20억원을 훨씬 넘을 것이다. 취임 당시 8억원대였는데 2배 넘게 불었다.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도 그것으로 도덕성을 판가름할 수 없다. 대법원장이 되자마자 재판 관련 예산 수억원을 공관 개축에 전용했고, 아들 부부를 1년 넘게 공관에서 공짜밥을 먹이며 데리고 살았던 그다.
이제는 어느 직업이나 가난을 자랑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누구나 열심히 일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풍요의 시대에 가난하면 성실하지 못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합법적인 재산 형성이라면 나무랄 수도 없다. 재산이 잣대인 시대는 지났다. 재산보다는 능력이다. 다만 부동산 투기나 과도한 전관예우와 같은 비도덕적 행위들은 중책을 맡기는 데 도덕적 흠결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후보자가 재산신고를 누락한 것은 잘못이다. 실제로 누락을 몰랐을지는 알기 어렵다. 알고도 누락했다면 도덕성에서 분명한 하자가 된다. 그러나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다. 재산, 돈 적은 것이 기준이 되지도 못한다. 비위만 저지르지 않았으면 된다. 야당이 이 후보자를 부결시킨 것도 재산 관련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반대를 위한 반대였을 뿐이다. 재산 때문이라면 더 이유가 부족하다.
손성진 논설실장 tonio66@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