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간 포연 끊이지않은 '중동 화약고'… 가자지구의 운명은
2023.10.16 06:00
수정 : 2023.10.17 17:07기사원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에 전쟁이 중동 화약고로 확전할 위기에 처했다. 해묵은 양측간 앙금이 전쟁 확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 숫자만 갈수록 늘면서 국제사회의 강도높은 지탄을 받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은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지상전까지 예고하고 있어 양측간 희생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15일 국내외 외교가 등에 따르면, 일단 전문가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을 변화시켰듯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촉발된 중동은 10월 7일을 기점으로 대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이스라엘 전쟁의 심각성은 홀로코스트 이후 최대이자 이스라엘 독립 후 하루 최다 사망자 발생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망자 수는 복원·수습 작업을 진행하면서 속속 증가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은 지난 7일(현지시간) 하루에만 하마스의 기습으로 발생한 대다수가 민간인인 이스라엘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섰다고 11일 보도했다.
1000만명에 못 미치는 이스라엘 인구 규모를 감안해 한국에 대입하면 하루 약 6000명, 미국으로 치환하면 하루 약4만명의 국민이 기습공격을 받고 사망한 정도의 충격적 사건이란 얘기다.
특히 현지 언론 일각에서 영유아를 포함한 희생자들의 상당수가 참수 또는 참수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정도의 잔악한 살해를 당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이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테러이자 전쟁으로 규정하고 보복을 다짐하고 나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악의 도시에서 하마스가 있는 모든 곳, 숨어있는 모든 곳, 활동하는 모든 곳을 폐허로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스라엘은 일주일째 가자지구를 사실상 포위한 채 공습과 포격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내 지상군 진입을 앞두고 양측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포함한 전황과 집계수치는 계속 변화할 전망이다.
■원인과 배경, 평화의 해법은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 내 팔레스타인 수용 지역이다.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길이 41km, 폭 10km의 지역으로 약 230만 명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다. 면적은 365㎢로 서울시(605.2㎢)의 절반보다 조금 더 크고, 인구는 2022년 기준 237만명으로 대구광역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수니파를 근본주의로 하는 군사·민족주의적 조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소멸을 목표로 한다.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선거에서 승리해 가자지역에서 사실상 정부역할을 하고 있다. 무장 정파라 불리는 이유다.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은 가자지구 외 약 320만명이 거주하는 서안지구(웨스트 뱅크 : 5860㎢)도 있다. 온건파인 파타 주도의 서안지구 자치정부는 노선도 완전히 다르다.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30여 년 전부터 무장 투쟁이 아닌 국제사회가 인정한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을 추진해 왔다.
1세기경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독립전쟁을 일으키지만 패배하면서 전 세계로 흩어진 이후 일부는 팔레스타인 안에서 공존하고 대부분이 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 종교와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랑을 시작한다.
2000년 가까이 나라 없이 떠돌던 유태민족은 2차대전이 끝난 후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 땅 일부를 불하받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독립 후 지금까지 75년간 팔레스타인은 '중동의 화약고'로 포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 전문가들은 본질적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아랍은 영토·종교·역사문제가 최악으로 얽혀있어 궁극적으로 평화의 해법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제4대 총리를 지낸 여성지도자 골다 메이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기를 내려놓으면 평화가 올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기를 내려 놓는다면 인종 학살이 자행될 것이다"라면서 "우리들 유대인이 아랍인들과 싸우는 비밀 병기는, 우리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영국 등은 하마스 전체 혹은 하마스 내 일부 군사 조직을 테러 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는 반면 브라질, 중국, 러시아, 이집트, 이란, 시리아, 카타르, 튀르키예 등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7일 새벽 개전 초기 양상... 아이언 돔 무력화
유대교 안식일인 2023년 10월 7일 새벽(현지시간) 오전 6시 30분부터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5000~7000여 개의 드럼통으로 만든 수제 로켓과 까삼 로켓이 반반 비율로 약 3시간 30분에 걸쳐 가자지구 인근 이스라엘 정착 도시와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까지 무차별로 덮쳤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로켓은 주요시설 외에도 민간구역에 떨어져 건물 붕괴와 차량 파괴 등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새벽 포성과 공습, 사이렌이 뒤섞인 도시는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당시 로켓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한쪽에 집중되어 있던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아이언 돔 대공방어망은 하마스의 모든 로켓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으로 사실상 무력화됐으며 이스라엘 국경 방어군은 타격을 입고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메르카바 전차조차 불타오르는 상황이 연출됐다.
하마스는 또 가자지구 인근 지역에 침입해 주민 수백 명을 살해하고 수십 명을 인질로 납치하는 등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공격을 감행했다.
하마스 특작부대원 일부는 동력형 패러글라이더를 동원해 장벽을 넘어 침투했으며, 동시에 불도저 등을 이용해 최소 7곳에서 가자 지구 경계 분리 장벽을 무너트리고 특히 남쪽 국경 방어선에 진입한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사살하면서 침투해 국경 방어선이 허물어지면서 이스라엘은 하마스 대규모 병력의 내부 침공을 허용한다.
이후 1500명에 이르는 하마스 특작부대원들은 이스라엘 군용 및 민간 차량으로 위장하고 가자지구 인접 이스라엘군 기지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정착촌 도시 깊숙이 침투해 여러 아파트의 출구를 불과 폭약으로 막고 군인과 민간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철 검(Iron Swords)' 작전 보복 다짐
역사적 근본 원인 측면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한쪽의 책임을 논하긴 어렵다.
분명한 것은 현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처절한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에 임하는 해당국은 '자신들이 항상 옳았다" 그래서 전쟁은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 아니라, 정의와 또 다른 정의와의 싸움"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CNN과 아랍 언론 알자지라 보도 등에 따르면 양측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가자 지구 내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사망자도 집계도 꾸준히 증가 중이다. 같은날 존 커비 백악관 미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번 분쟁과 관련해 최소 22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자국민 사망에 대해 프랑스는 8명, 태국 18명, 오스트리아도 66세의 여성을 자국민 첫 사망 사례로 확인했다.
이스라엘은 1973년 윰 키프로 전쟁 이후에 처음으로 하마스에 대해 대대적인 보복전을 예고하면서 공식 선전포고를 선언하고 예비군 동원령을 발령하면서 짙은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군 다니엘 하가리 대변인은 "하마스가 지상과 해상, 공중을 통해 이스라엘에 침투했다"며 "이에 대응해 '철 검(Iron Swords)' 작전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군사조직 하마스는 이번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며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선언하고 "우리는 이스라엘 점령 세력의 범죄를 끝장내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 지도자 모하마드 데이프는 "모든 곳의 팔레드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인을 공격하라"면서 "지구의 마지막 인종차별 정권인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위대한 전투의 날"이라고 주장했다.
8일(현지 시각) 하마스 대변인 가지 하마드는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해방될 때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했다며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적인 다중 전선 공격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BBC에 밝혔지만 이란은 그런 적이 없다며 이를 즉각 부인했다.
■이스라엘 압도적 대응, 아랍과 확전을 피할 듯
올해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이미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사상 최악의 해로, 이에 자극을 받은 하마스가 주민들을 더욱 장악 이슬람 저항 운동을 선동하고 이스라엘 대 아랍의 대결로 몰고가 프로파간다적 승리를 거두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반 이스라엘 도전 세력에 대해 압도적 대응에 나서면서도 아랍세력 전체로 확전하는 양상은 피하려 할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한편 하마스가 이번에 여러 이스라엘인들을 잡아 억류한 것을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4500명을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이스라엘이 보복을 가해올 때 인간 방패를 삼으려는 의도란 관측이다.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스라엘의 숙적인 이란이 있다는 추측도 있으나, UN 이란 대사는 이러한 개입설을 부인하고 나섰다.
이번 하마스의 기습에 대해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사전에 정보를 몰랐겠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하부 조직에서 관련 정보 소스가 있었지만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정보기관의 혼선 등으로 보고 과정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추정되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는 향후 상당기간 관련해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추정했다.
■유엔의 무력화 교훈, 국제사회 연대 가속화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번 공격의 원인에 대해 국제질서가 혼돈의 과도기에 직면한 상태이며 유엔 등 국제기구의 역할이 무력화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긴급 소집된 유엔 안보리 회의도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반대로 만장일치 규탄 성명은 성사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신냉전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점에 주목하면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두 개의 전쟁이 하루 속히 끝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그 연대를 가속하는 것이 절실하다.
하마스의 대규모 로켓 공격으로 무력화되는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을 반면교사 삼아 당장은 개발 중인 '한국형 아이언돔' 완성도 제고 차원부터 교훈 도출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은 국지도발, 전면전, 핵 강압 등 모든 유형의 위협을 투사하는 북한을 상대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쟁의 여러 교훈을 도출해 전쟁을 억제하고 북한의 여러 도발 시나리오를 유효한 수준으로 차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