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없었다면 삼성, 국수 팔고 있었을 것"..해외 석학이 본 신경영 30년

      2023.10.18 16:52   수정 : 2023.10.18 16:5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이건희 선대회장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발굴하고 발명했고, 과거에 묶여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단한 전략 이론가였다. 이 선대회장이 없었더라면 삼성은 지금처럼 반도체·전자기기가 아닌 국수를 팔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진행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이 선대회장의 리더십을 이 같이 평가했다.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가 후원하고 한국경영학회가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는 이 선대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로 대표되는 '신경영 선언'을 하고 본격적인 경영 혁신에 나선 지 3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열렸다. 삼성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경쟁사들의 위협으로 반도체 등 주력사업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신경영 선언 30주년을 톺아봄과 동시에 이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과 정신을 되새기며 선도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제2의 신경영 선언'에 준하는 도약에 나설 계획이다.


"'베이브 루스' 닮은 KH""KH家는 한국의 메디치家"

이날 '이건희 경영학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첫 기조연설을 진행한 마틴 명예교수는 이 선대회장을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홈런왕인 '베이브 루스'에 빗댔다. 그는 "이 선대회장은 삼성이 잘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초일류 지위를 선점하겠다고 공언했고 반도체·스마트폰 등 사업에서 공언한 목표들 실제로 이뤄내며 증명했다"면서 "베이브 루스가 인터뷰 중 배트를 가리키며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치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홈런을 날린 모습이 연상된다"라고 이 선대회장의 추진력과 리더십을 극찬했다.

이어 두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는 이 선대회장의 비(非)경영 분야 유산을 평가했다. 김 교수는 세금을 많이 낸 기업인은 '기업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한 기업인은 '대기업 리더', 선의를 바탕으로 자선가로서의 면모까지 갖추면 '시대 정신'이라고 정의하고 "이 선대회장은 이탈리아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가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남긴 한국의 시대 정신"이라고 평가했다. 이 선대회장은 △개인소장 미술작품 2만3000여점을 국립기관에 기증 △감염병·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위한 1조원 규모 의료 공헌 △과학·의료·복지·체육분야 지원 등 사회공헌에 적극적이었다.

"삼성, 직원몰입도 확대·스킬 기반 채용·문어발식 사업확대 지양해야"

석학들은 삼성의 '인재제일' 정신을 한층 더 강화시켜야 한다고 입모아 주문했다. 마틴 교수는 '직원 몰입도 강화'를 방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1993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0개 기업이 10배 성장한 데 비해 삼성은 18.8배의 엄청난 성장을 거뒀다"며 "거대해진 기업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인 직원들이 스스로를 작은 나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벨보이와 짐을 나르는 직원 등 모든 구성원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나선 포시즌스의 사례를 참고해 직원 몰입을 강화할 것을 마틴 교수는 제언했다.

거대해진 삼성에 대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는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고 첨가하는 것은 쉽지만 건전하게 편집하고 필요없는 조직을 과감히 정리하는 이 선대회장의 결단은 미래 삼성에서도 계승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틴 교수도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삼성이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면서 "할 수 있다고 해서 많은 산업군에 진출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선택과 집중에 나설 것을 제언했다.

"삼성, 도약 위해 윤리·인권 신경써야" 쓴소리도

한편, 삼성의 도약을 위한 석학들의 쓴소리도 이어졌다. 김태완 카네기멜론대 경영윤리 교수는 '인공지능(AI) 붐'에 따라 업계 화두로 떠오른 'AI 윤리'에도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는 기업에서 윤리를 담당하는 임원의 직급이나 권한이 국내 기업에 비해 강하다"면서 "(사실상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에 윤리 책임자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래 삼성의 걸림돌로 △소프트 경영 미진 △기후변화·양극화·포용적 기술·협력사 인권 등 공급망 이니셔티브 부족 △수직적 조직문화 등을 꼽았다.
구 교수는 해결책으로 "사람 중심을 강조한 신경영 업그레이드해 인간 존엄성을 최선에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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