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년들' 권력에 맞서 연대한 소시민의 용기

      2023.10.24 23:59   수정 : 2023.10.25 00:0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1999년 2월 6일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발생한 ‘삼례나라슈퍼 사건’은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는데 왜 굳이 영화로 만들었나?

지난 23일 영화 ‘소년들’ 언론시사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지영 감독이 답했다. “많이 알려진 사건이지만 한 번 더 잘 들여다보자, (죄가 없는) 세 소년이 감옥을 가는데 우리가 동조한 게 아닌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다시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행사 말미에 이런 말도 보탰다.

“우리 스스로 마음은 약자 편인데, (대다수가) 침묵을 지킨다. 강자는 그 침묵을 이용해서 약자를 힘들게 한다.
처음에는 이 영화의 제목을 ‘고발’이라고 할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창인 뉴스를 보면서 분노하기란 쉽다. 하지만 그 분노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행동으로 연결 짓는 것은 쉽지 않다.

삼례나라 슈퍼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년들’은 한국사회의 초상과 같다. 힘없는 자들은 쉽게 짓밟히고, 불의에 저항하던 소시민은 불이익을 당하며, 권력자들은 지난 과오가 드러나도 그 어떤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미친 개’로 통하던 수사반장 황준철(설경구)은 의문의 제보전화를 받고 우리슈퍼 강도치사 사건을 재수사한다. 세 소년이 경찰의 폭행과 강요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하고 복역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분노하며 진실을 밝히려 하나 당시 사건의 책임 형사였던 '최우성'(유준상)과 담당 검사(조진웅)의 방해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황반장은 좌천된다. 그로부터 16년 후 젊은 시절과 사뭇 달라진 황준철 앞에 피해자 할머니의 딸이자 유일한 목격자였던 윤미숙(진경)과 성인이 된 소년들이 나타난다.

‘소년들’은 허구의 인물 황준철을 중심으로 사건이 발생한 1999년과 재심을 청구하는 2016년을 오가며 이사건을 다시금 면밀히 들여다본다. 단지 실화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사건이 갖고 있는 함의를 다층적으로 보려고 애쓴다.

전반부가 수사극의 형식을 띄며 이 사건이 어떻게 조작됐는지 보여주면서 안타까움과 분노, 무기력함을 안겨준다면 후반부는 재심 재판과정을 다룬 법정극을 통해 권력에 맞서 연대한 소시민의 용기로 희망의 기운을 전한다.

극중 설경구 아내 역 염혜란은 이날 사건을 접하고 "엄혹한 시절이 아니라 내가 평화롭게 대학을 다니던 1999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데 놀랐다"고 말했다. 국가는 무릇 국민을 보호해야 하나, 정지영 감독 작품 중 ‘남영동 1985’처럼 그 반대의 일을 자행하기도 한다.

살인자로 몰린 세 소년과 진범 3인이 대질신문을 하는 장면에서, 소년들도 울고, 진범들도 우는 장면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정지영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소년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이 세상 또 다른 ‘소년들’의 고통을, 힘없는 약자들의 처지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실화 소재라 마냥 무겁고 진지할 것 같으나 딱히 그렇진 않다.
사건과 무관한 영화적 인물 중 설경구 아내 역 염혜란과 후배 역 허성태가 소소한 웃음을 전한다.

요즘 뉴스 속 현실과 달리 죄책감을 느끼는 가해자,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인물들을 보는 것은 반갑다.
다만 인물이 관객보다 앞서 분노하거나 극중 소년들이 밀실에서 폭력을 당하는 장면처럼 감독의 연출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오히려 감정의 온도를 낮춰 아쉽다. 11월 1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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