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십단선 변경이 담긴 의미
2023.11.01 07:00
수정 : 2023.11.01 07:00기사원문
그렇다면 현재 해양이라는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신냉전이라는 과도기 국제질서 속에서 해양공간이 상대이익을 위한 투쟁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바다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의 공간은 점차 사라지고 마치 서부개척 시대처럼 힘을 이용해서라도 먼저 쟁취해야 하는 기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남중국해뿐 아니라 대만해협, 동중국해, 북극해, 흑해 등도 이러한 기제에 놓여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십단선 등장은 신냉전 국제질서에 뜬금없이 등장했다기보다는 남중국해를 대상으로 한 중국의 장기적 회색지대전략이 완성 수순에 접어들면서 이번에 10번째 단선이라는 방점을 찍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치밀한 계획이라는 시각이 타당하다. 회색지대전략은 상대방이 고강도로 대응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방식의 강압을 통해서 상대방의 이익을 잠식하는 효과를 축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상당한 시간적 프레임이 가동된다. 구단선의 기원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은 1947년에 11개 단선으로 구성된 남중국해단선(The South China Sea Dotted Line)을 만들었다.
1953년에는 이를 구단선으로 변경하면서 장기간의 회색지대 기제를 가동하게 된다. 중국은 구단선 이내 해역의 90%가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었기에 주변국의 중국의 해양강압에 반발해 왔다. 특히 2013년 필리핀은 이 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그러자 중국은 회색지대 첨병인 해상민병 등을 활용하여 남중국해 내 암초를 인공섬으로 바꾸어 군사화하기 시작했다. 2016년에 PCA가 중국도 서명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근거로 한 판단에서 구단선이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공모함 등을 동원한 무력현시로 남중국해에서 회색지대 강압을 구사해 오고 있다.
한편 70여년 간의 회색지대전략을 통해 사실상 남중국해 내해화 목표를 상당부분 달성했다고 인식한 결과, ‘회색지대’에서 ‘흑백지대’로 그 기제를 변경하는 신호탄으로서 십단선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은 이제 남중국해를 ‘회색지대 강압’의 대상에서 ‘해양통제(Sea Control)’의 대상으로 변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중국몽을 내세우며 2049년 초강대국 입성을 지향하는 중국이 이제부터 공세적 해양전략을 본격화하겠다는 의미다.
십단선에는 대만 공세 강화에 대한 전략적 메시지도 내포하고 있다. 10번째 단선은 대만 동쪽에 그었다는 점에서 대만 포위를 염두에 둔 포석이 짙다. 더불어 10번째 단선은 일본 요나구니섬 서쪽에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만 관여를 차단하고 일본과의 해양경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포석도 깔려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이러한 전략적 해양공세가 한국에는 무관한 것일까? 중국은 이미 서해 내해화를 위한 회색지대전략을 시작했다. 중국이 서해 내해화 전략을 진행하는 과정에 남중국해 내해화 공식을 그대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은 회색지대전략을 투사하는 행위자의 편이라는 특성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어느 순간 이미 이익이 잠식된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의미다. 중국의 서해 내해화 상쇄를 위한 한국형 흑백지대전략을 구체화해야 할 시기라는 점이 주지해야 한다. 한일중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의와 같은 중요한 외교적 행보를 잘 추진하면서 동시에 해양안보도 제대로 지켜내는 고난이도 퍼즐을 지혜롭게 풀어내야 할 것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