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현장처럼 추모공원 만들어 희생자 기억해야"
2023.11.02 18:22
수정 : 2023.11.02 18:22기사원문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1번출구 앞 골목에서 159명이 희생된 참사 현장을 지켰던 남인석씨(82)의 이야기다.
2일 본지는 남씨를 비롯해 이태원 참사를 직접 경험했던 다양한 상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태원 문화 복원해야"
이태원에서 40년, 그 골목에서만 12년째 잡화점을 운영해 온 남씨는 그날 가게 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청년들을 끌고 들어와 살려낸 장본인이다. 그는 참사 이튿날 희생자들을 위해 제사상을 차려준 뒤 반년 이상을 참사 현장인 가게에서 먹고 자며 그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1㎞ 떨어진 녹사평역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참사를 겪고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남씨는 바라는 것은 이태원 문화의 복원이었다.
남씨는 "이태원 문화가 좋아서 온 청년들이 무슨 죄냐"며 "지자체와 경찰이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핼러윈 데이 축제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이태원 자체나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태원을 나쁜 이미지와 연관시키거나 참사 이후 혐오지역으로 낙인찍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유족과 청년들이 함께 추모하고 축제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소망이 있다면 과거 자신이 세 들어 가게를 운영하던 자리에 추모공원이 생기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로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자리에 조성된 추모공원 '그라운드 제로'처럼 이태원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가게가 있던 건물은참사 이후 무허가 건물로 확인돼 철거됐다고 한다. 남씨는 "그 작은 땅이 쪼개져 31명이 소유주로 돼 있지만 특별법이 통과되면 9·11 테러 현장처럼 분수가 있는 공원으로 조성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상권이 회복돼야 하는데…
이어 참사 당일 112에 최초 신고했던 박모씨를 찾았다. 박씨는 핼러윈 데이를 대하는 올해 보여준 경찰과 지자체의 대응에 대해 비판했다. 지난해 참사 당일에는 신고를 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올해는 지나치게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금요일과 주말은 사람이 적어 대응이 필요 없었는데도 많은 인원과 장비가 동원됐다. 정반대 의미에서 대응 실패라는 생각"이라며 "10년 넘게 핼러윈 데이에 매년 10만명 이상이 모이는 축제였음에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용상)구청장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달 27~28일 핼러윈 데이 기간이었지만 이태원은 평소 주말보다 한산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200m에 걸쳐 안전 펜스를 설치했다. 용산구청 직원도 이태원 곳곳에서 순찰을 돌았다.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에 대한 비판은 다른 상인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참사 극복이나 상권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이태원에서 남미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남성 A씨는 "대다수 상인들은 매년 추모제를 여는 것에 동의한다. 문제는 영업을 방해하는 구청과 경찰"이라며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전쟁 난 것처럼 바리케이드를 치고 평소보다 과도하게 단속하면 장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A씨의 경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나 다시 핼러윈이 돌아온 만큼 예년 대비 70% 수준으로 물량을 준비했다. 하지만 물량의 상당수는 재고로 남았다고 한다. A씨는 "직원이 원래 5명이었는데 장사가 안돼 1명밖에 안 남았다"며 "핼러윈 데이는 세계음식문화축제와 함께 이태원 상인들의 대목인데 이러면 살아날 길이 없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고 전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