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백성들은 기근과 역병에 〇〇〇를 먹고서 면했다
2023.11.25 06:00
수정 : 2023.11.26 07:41기사원문
때는 조선 순조 9년(1809년), 온 나라에 기근이 찾아왔다. 느닷없이 찾아온 가뭄으로 온 나라의 논밭의 작물이 모두 말라버렸다.
순조는 하교하기를, “지금은 겨울철이 이미 깊었는데 기근에 허덕이는 저 불쌍한 백성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죽는 걱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깊은 걱정 속에서 마음이 놓이지를 않는다. 구휼(救恤)에 사용된 물자나 곡식에 대한 구획에 때를 놓친다면 탄식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충청도와 전라도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니 양호(兩湖) 지역의 구황(救荒)은 더더욱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서둘러 각도의 물자를 구획하여 공평하게 내려보내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그러나 곡식이 조금 남아 있다는 다른 지방에서조차 나눠 줄 식량들이 넉넉하지 않아 곳간 문을 걸어 잠갔다. 백성들에게 식량을 대신할 것들이 필요했다. 조정에서는 솔잎(송엽), 측백나무잎(측백엽), 둥굴레뿌리(황정), 천문동, 삽주뿌리(출), 마(산약), 하수오, 느릅나무의 껍질(유백피), 복령, 도토리(상실), 밤(율), 토란, 연근(우), 잣(해송자), 가시연밥, 개암열매, 검정콩 등의 채취법과 복용법을 정리해서 각도에 내려보내도록 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 다음 해 봄이 되었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겨울을 지나면서 역병까지 번졌다. 굶주려 죽거나 역병에 걸려 죽은 백성들이 길거리에 넘쳐났다. 그런데 오직 남해의 섬인 보길도 백성들만은 무사하다는 소문이 났다.
이 소문이 조정에까지 전해졌다. “전하, 보길도 백성들은 기근을 잘 견디고 있고 역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순조는 “그래도 섬이라고 먹을 것이 남았고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역병이 번지지 않는 모양이오.”하고 물었다.
신하가 순조에게 보길도의 상황을 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해 인근의 보길도보다 자잘한 섬까지 기근과 역병이 번졌음에도 불구하고 보길도 백성만이 무탈한 것을 보면 어떤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라고 했다.
보길도의 백성들의 방법을 귀담아 들어 온 나라의 기근과 역병을 이겨내고자 했던 것이다. 순조는 그렇게 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조정에서는 급히 내의원(內醫院)과 활인서(活人署)의 의관들을 몇 명 선발해서 보길도로 시찰을 보냈다. 내의원은 왕실의 진료를 담당하는 기관이고, 활인서는 서민의 의료를 담당하면서 역병과 같은 전염병과 함께 주린 백성에 대한 구휼까지도 담당하는 기관이다.
의관들은 말을 타고 보길도로 향했다. 보길도까지 내려오는 동안 길거리에 멍석에 말려 버려진 이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역병으로 죽은 이들을 길에 내버린 듯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날씨는 따뜻했고 잔인하게도 들녘의 푸르름은 더욱 짙어만 갔다. 그러나 식량으로 먹을 만한 것들이 아닌 초목의 싹과 잡초들뿐이었다. 먹을 만한 나무의 껍질은 이미 모두 벗겨진지 오래되었다.
드디어 보길도에 도착했다. 보길도는 평온해 보였다. 의관들은 보길도에 있는 약방에 머물면서 진상을 파악해 보고자 했다. 약방의 의원은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도움을 줬다.
때마침 마을 사람들이 산에서 무언가를 캐고 있었다. 의관이 의원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은 산에서 무엇을 캐는 것이요?” 그러나 의원은 “덩굴을 보면 모르것소. 칡을 캐지라. 바로 갈근(葛根)이군만요.”라고 했다.
보길도에는 칡이 많이 났다. 보길도와 가장 가까운 육지인 해남에도 칡이 많았다. 해남에 있는 토말(土末, 땅끝마을)은 칡이 많이 나서 칡머리 혹은 갈두(葛頭) 마을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토말에 있는 산의 이름도 갈두산(葛頭山)이다. 보길도 사람들은 간혹 배를 타고 해남의 토말까지 가서 칡을 캐 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마을에 모여서 산에서 캐온 칡뿌리를 물에 씻어서 절구에 찧었다. 의관이 물었다.
“이 칡으로 무엇을 할 요량이시요?” 그러자 마을 사람 중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 분이 “이 칡으로 갈분(葛粉)을 만들거구만. 보길도에서는 이 갈분이 밥이랑께. 원래는 겨울칡이 좋은디 요즘같이 흉년이 들믄 겨울칡 봄칡이 어디 따로 있당가?”라고 했다.
칡뿌리는 땅 속에 있어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구할 수 있어 구황식품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갈분(葛粉)은 바로 칡전분이다. 칡에는 전분이 많은데, 칡전분은 탄수화물로 영양소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노인이 갈분을 밥이라고 한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갈분을 먹으면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오랫동안 배고픔을 견딜 수 있었다. 전라도에서는 전분이 많은 암칡을 밥칡이라고 불렀다. 숫칡은 갈분이 잘 안 만들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칡을 잘게 잘라서 절구에 넣고 찧었다. 이렇게 찧은 칡을 삼베주머니에 넣고 물속에서 계속 주물럭거렸다. 칡에서는 미숫가루를 풀어 놓은 듯한 뜨물이 나왔다. 더이상 칡에서 아무것도 안 나올 때까지 물을 추가해서 쳐대면서 주물럭거리며 짜냈다. 이렇게 짜낸 칡즙을 그릇에 넣고 하루 정도 놓아두면 바닥에 진흙처럼 앙금이 가라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위의 맑은 물을 모두 버리고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앙금만 모아서 말렸다. 이것이 바로 갈분(葛粉)이다.
갈분은 뭉쳐 놓으면 찰흙처럼 뭉치기 때문에 덩어리를 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이것을 일부 쪼개서 물에 넣고 끓이면 색깔이 투명해지면서 아교처럼 진득해진다. 마치 감자전분처럼 말이다. 칡전분은 꿀과 함께 섞어 마시거나 생강가루를 넣어 마시기도 하고 차에 넣어서 마시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두들 갈분을 만들어 먹을 수는 없었다. 며칠을 굶어 배고픔으로 생사를 오갈 때는 그냥 생칡을 씹어 먹기도 했고, 칡을 갈아서 칡즙을 내 마시기도 했다. 칡은 성질이 서늘하고 냉하기 때문에 간혹 속이 냉한 체질은 칡을 먹으면 설사를 하기도 했다. 이럴 때는 생칡을 구워서 익혀 먹으면 속이 편했다. 오래되어 마른 칡은 물에 넣고 끓여서 그 물을 마셨다. 갈분(葛粉) 만큼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먹는 것이 안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보길도 사람들에게는 칡이 밥이었다.
며칠 동안 여러 가지 상황을 파악한 의관들은 모여서 논의를 했다. 한 의관이 “알고 보니 보길도 백성들이 기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섬에 풍성한 칡 때문이었습니다. 구황본초(救荒本草)와 같은 의서에서도 보면 칡은 배고픔을 달래고 쪄서 먹거나 물에 비벼 전분으로 걸러 내어 덩어리로 만들어 익혀서 먹을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의관이 “또한 이 갈근이 역병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보길도 사람들은 이곳 약방 의원이 시키는대로 역병에 걸리면 칡뿌리 4냥과 메주콩으로 만든 약전국 1되를 함께 달여 복용해서 땀을 내게 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장중경이 상한으로 인한 대열을 치료할 때 갈근탕(葛根湯)을 처방해서 피부의 땀구멍을 풀어 발산시키는 치료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의서에도 온병으로 열독이 치성할 때는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나 갈근해기탕(葛根解肌湯)을 처방하라고 하지 않았소이까.”라고 했다.
이때 약방의 의원이 거들었다. “맞습니다요. 보길도에 부잣집이 있는디, 그 집은 곡식이 있어서 갈근이나 갈분(葛粉)을 먹지 않았다고 허네요, 근디 그 가족만은 모두 역병에 걸려 죽었답니다. 이것을 보면 칡뿌리가 역병을 막는데,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라고 했다.
약방의 의원은 이어서 “제가 또 소문을 들어보니 육지인 해남 백포(白浦) 마을에는 윤씨 가문이 모여 사는디, 그래도 뭍이라고 곡식이 좀 있어서 곡식으로 양식을 삼을 수 있었답디다. 근디 그 마을에 오직 두 집안만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겨울부터 봄까지 칡만 먹었다고 헌디. 그랑께 곡식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굵어 죽지는 않았지만 역병에 걸려 죽어나갔다고 허드만, 그래도 이 두 가난한 집안 사람들만은 배는 곯았어도 역병에 걸리지 않고 초연히 면했다고 헙디다.”라고 했다.
의관들은 이러한 내용을 모아 내의원을 통해서 순조에 보고를 했다. 보길도의 실례를 통해서 칡이 배고픔을 이겨내게 하면서 역병에도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온 나라에 퍼져나갔다. 의원들조차도 의서에 있는 내용이 참으로 사실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이를 믿는 백성들은 고비를 넘겼지만 설마 했던 자들은 생사를 오갔다.
안타깝게도 순조 9년(1809) 기사년(己巳年)부터 갑술년(甲戌年)까지 5년 동안 해마다 온 나라에 흉년이 들었다. 한 고을에 흉년이 들면 이웃 고을의 곡식을 옮겨올 수 있고, 한 도(道)가 흉년이 들면 다른 도의 곡식을 옮겨올 수도 있지만, 이처럼 온 나라가 큰 흉년이 들면 어찌하랴. 온 나라에 있는 칡이 거덜 날 지경이었다.
** 제목의 〇〇〇은 ‘칡뿌리’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목민심서>嘉慶己巳之飢. 瘟疫大熾. 海中諸島. 亦皆不免. 唯甫吉島之民. 安然無事. 蓋此島多葛. 民皆作葛粉. 自冬及春. 以此爲糧也. 葛粉不但救荒. 亦能辟瘟. 其島中惟一民有糧. 不食葛粉. 獨自遘癘. 全家皆死. 白浦尹氏之村. 有二氓特貧. 自冬及春. 以葛粉爲糧. 一村皆溝癘. (가경 기사년 1809년 순조9년, 기근에 온역이 크게 번져서 바다 안의 여러 섬까지도 모두 면하지 못하였다. 오직 보길도 백성들만이 안연히 무사했는데, 이 섬에는 칡이 많아서 백성들이 모두 칡가루를 만들어 겨울부터 봄까지 이것으로 양식을 한 때문이었다. 칡가루는 구황을 할 뿐만 아니라 온역도 물리칠 수 있다. 그 섬 안에서 오직 한 백성만이 양식이 있어서 칡가루를 먹지 않았더니 홀로 전염병에 걸려 온 집안이 몰사하였다. 백포 윤씨 마을에 두 백성이 특별히 가난해서 겨울부터 봄까지 칡가루로 양식을 하였다. 온 마을이 모두 전염병에 걸렸으나, 이 두 집만은 초연히 면하였다.)
<구황본초(救荒本草)>葛根. 救饑, 掘取根, 入土深者, 水浸洗淨, 蒸食之, 或以水中揉出粉澄濾成塊, 蒸煮皆可食. 及采花曬乾煠食亦可. (칡뿌리. 배고픔을 달랜다. 뿌리를 파서 취하는데 흙 깊숙이 들어간 것은 물에 담가 깨끗이 씻어 쪄서 먹고, 물에 비벼 전분으로 걸러내어 덩어리로 만들어 익혀서 먹을 수 있다. 또한 꽃을 따서 햇볕에 말려서 먹어도 된다.)
<의휘>〇 癘疫之闔門渾死, 僞謂天行時氣. 葛根四兩, 豆豉一升, 同煎服. (역병으로 집안의 사람들이 모두 죽는 것을 민간에서는 천행시기라 한다. 갈근 4냥, 두시 1되를 함께 달여 복용한다.)
〇 升麻葛根湯, 方見傷寒, 治傷寒及時疫, 增寒壯熱. 水煎, 不拘時稍溫服, 日用二三貼, 以病去身涼爲度. (승마갈근탕은 상한 및 유행성 역병으로 매우 춥고 심하게 열이 나는 것을 치료한다. 물에 달여 수시로 따뜻하게 하여 조금씩 복용하는데, 하루 2~3첩씩 병이 제거되어 몸이 시원해질 때까지 쓴다.)
<동의보감>〇 葛根. 採取作粉餌之, 可斷穀不飢. (칡뿌리. 이것을 채취해서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곡식을 끊어도 배고프지 않다.)
〇 葛根. 性平一云冷, 味甘, 無毒. 主風寒頭痛. 解肌發表, 出汗開腠理, 解酒毒, 止煩渴, 開胃下食. 治胸膈熱, 通小腸, 療金瘡. (칡뿌리. 성질이 평하고 차다고도 한다. 맛은 달며 독이 없다. 풍한두통에 주로 쓴다. 땀을 약간 내어 사기를 발산시키고, 발한시켜 주리를 연다. 술독을 풀고 답답하고 목마른 것을 멎게 하며, 식욕을 돋우고 소화를 돕는다. 가슴의 열을 없애고, 소장을 잘 통하게 하며, 쇠붙이에 다친 상처를 치료한다.)
〇 生根, 搗取汁飮, 療消渴, 傷寒溫病壯熱. 採生葛根, 搗爛浸水中, 揉出粉, 澄成片, 擘塊, 下沸湯中, 以蜜生拌食之, 解酒客渴, 甚妙. (생 칡뿌리. 생뿌리를 찧어 즙을 내어 마시면 소갈과 상한ㆍ온병으로 몹시 열나는 것을 치료한다. 칡뿌리를 캐어 곱게 짓이겨 물 속에 담그고 주무르면 가루가 나온다. 이 가루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아 덩어리가 된다. 이것을 끓인 물에 잘 풀고 생 꿀을 타서 먹으면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의 갈증을 풀어 준다. 효과가 매우 좋다.)
〇 葛根解肌湯. 治春疫, 發熱而渴. (갈근해기탕. 봄에 생긴 온역으로 열이 나고 갈증이 있는 것을 치료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