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로 만든 집, ‘게임질병론자들의 연구보고서’ (下)
2023.11.25 07:00
수정 : 2023.11.25 11:52기사원문
우선 용어의 통일이 되어 있지 않다. 이 같은 연구 자료는 반드시 용어의 사용이 일관되어야 한다. 정확한 해석뿐만 아니라, 연구 내용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는 ‘게임이용장애’, ‘게임사용장애’, ‘게임장애’를 혼용하고 있다. 분석해보니 게임이용장애 431회, 게임사용장애 17회, 게임장애 145회를 사용하였다. 다른 단어도 아니고 연구의 가장 핵심이 되는 말부터 마구잡이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진 스스로도 용어의 정의가 정립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보고서 검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둘째, 연구에 참여한 게이머들이 플레이한 게임의 일관성이 없다. 같은 게임을 이용한 사람들끼리 묶어서 비교를 하던가, 적어도 같은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한 이용자들을 모아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어떤 연구참여자는 ‘VR챗’을 이용 게임으로 답변했고, 다른 연구참여자는 ‘배틀그라운드’를, 또 다른 참여자는 ‘루미큐브’를 플레이했다고 답했다. 애당초 VR을 활용한 채팅 플랫폼인 VR챗과 보드게임인 루미큐브 이용자를 일반 온라인 게임 이용자와 한데 묶은 것이 말이 되냔 말이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이라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셋째, 다른 실험에서는 게임의 범위조차 부정확하게 설정하고 있다. 참여 대상군의 게임 이용 플랫폼을 인터넷 게임과 스마트폰 게임으로 한정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와 같은 거치형 콘솔, 닌텐도 스위치로 대표되는 휴대형 콘솔, 소위 오락실 게임기로 떠오르는 아케이드 게임 등 다양한 게임 플랫폼을 제외한 것은 이 연구의 신뢰도가 얼마나 빈약한 지를 보여준다. 참고로 ‘2023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해 콘솔 게임 이용률은 15%에 달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시해선 안 될 수치다.
넷째, 질문이 모호하다. 면접참여자에게 묻는 질문항목 중 ‘스스로 또는 주변의 권유로 게임 시간을 줄이려 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라는 내용이 있다. 언뜻 듣기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패의 기준을 묻는다면 쉽사리 답하긴 어려울 것이다. 가령 매일 3시간씩 게임을 이용하는데 이 중 1시간씩 이용을 줄이려고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어떤 사람은 10분만 줄여도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평소보다 50분을 적게 플레이해도 목표치인 1시간에는 다다르지 못했기에 실패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기능 손상 측정을 위한 질문 중 ‘과도한 게임 이용으로 인해 대인관계나 직장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항목이 있다. 심각함의 기준이 모호하다.
다섯째,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평생 총 이용한 게임수를 묻는 대목에선 실소가 나온다. 게이머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한 게임을 해도 과도하게 빠져들 수 있고, 100개의 게임을 플레이해도 소위 ‘찍먹’만 하고 끝낼 수 있다. 게임을 장르별로 분류한 대목에서는 실소를 넘어 폭소가 나온다. 연구진이 분류한 게임 장르와 게임들은 다음과 같다.
1) RPG (역할 수행 게임) (예: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세븐나이츠, 리니지, 검은사막 등)
2) AOS (공성게임) (예: 리그오브레전드, 히오스 등)
3) FPS/TPS (1인칭/3인칭 슈팅게임) (예: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오버워치, 카운터스트라이크 등)
4) RTS (실시간 전략게임) (예: 스타크래프트, 클래시 로얄, 브롤스타즈 등)
5) 스포츠 게임 (예: 마구마구, 피파 등 경기를 하거나 대전을 펼치는 게임)
6) 캐주얼 게임 (예: 앵그리버드, 쿠키런, 테일즈런너, 퍼즐 게임, 리듬 게임 등)
7) 기타 (예: 웹/보드게임, 레이싱게임, 아케이드 게임 등의 기타 게임장르)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와 수집형 RPG 게임인 세븐나이츠, MMORPG인 검은사막을 'RPG'란 이름으로 한데 묶은 것부터가 황당하다. 스타크래프트와 클래시로얄, 브롤스타즈를 같은 장르로 분류한 것은 더욱 황당하다. 언급한 게임들 각각의 게임 스타일부터 확연하게 다르다. 일반적인 게이머들이라면 저 게임들을 한 장르로 분류하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게임들도 분류가 엉망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연구가 얼마나 엉터리로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오류들과 게임에 대한 무지들을 드러내는 사례들이 많다. 이정도로 게임을 모르고 엉터리로 작성한 연구보고서가 정부의 판단근거로 활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끼친다.
정부는 이 결과물에 대하여 보완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보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연 보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일지 걱정이다. 그리고 명심하자. 거듭 강조하지만, 게임 이용을 ‘질병’으로 몰아가는 학자들의 수준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자들에게 휘둘려 게임이 질병으로 낙인찍혀선 안 된다. 게임 이용자 분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정리/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