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칼부림 났다"..손끝으로 퍼나르며 확산하는 '조작정보'

      2023.12.28 09:15   수정 : 2024.01.18 09:27기사원문
[편집자주] 허위사실과 왜곡된 정보가 ‘가짜뉴스’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사회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가짜뉴스'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한 학계·언론·정치권은 '가짜뉴스'의 범위와 본질 규정을 놓고 수년째 논쟁만 지속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뉴스는 빠르게 발전하는 허위·왜곡정보 기술에 비해 턱없이 더딘 가짜뉴스 대책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짚어내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담아 4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파이낸셜뉴스]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골칫거리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온라인상에 각종 거짓 정보가 확산하면서, 가짜뉴스가 아예 전쟁 중 무기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내용과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으로 급격하게 확산한다.

자극적 가짜뉴스로 시민 불안 '가중'

최근 국내에서는 다중 밀집 장소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이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SNS에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역에서 칼부림'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붙은 게시물이 확산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행정구역이 언급되는 등 대부분 근거 없는 허위 정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8월 엑스(X·옛 트위터) 및 각종 SNS에 올라온 '강북구청 앞에서 칼부림 났다'는 제목의 글에는 옷에 피가 묻은 남성의 사진이 첨부되기도 했다. 게시물 댓글에는 '여성 2명은 온몸에 피가 묻었다' 등의 구체적 상황 설명까지 달렸다. 하지만 이는 사진 속 남성이 자해를 한 것을 칼부림으로 오인한 거짓 정보였다.

이 같은 가짜뉴스에 시민들의 공포감은 커졌고 이에 대응하는 경찰력도 낭비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 분열시키는 '정치적' 가짜뉴스

지난 7월 서이초등학교 여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여당 3선 의원이 있다는 가짜뉴스가 유포됐다.

당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입만 열면 가짜뉴스를 떠벌리는 '거짓말 제조기' 김어준씨가 서울 모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그 원인 제공자가 국민의힘 3선 의원이라는 거짓말을 너무나 뻔뻔스럽게 해댔다"라며 "가짜뉴스가 마구 퍼져 당사자에게는 회복불능의 피해를 끼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결국 여당은 야권인사인 김씨의 허위사실 유포로 촉발된 '가짜뉴스' 논란에 대한 공세를 더불어민주당에까지 확장하면서, 가짜뉴스가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현금 20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폭력조직 국제마피아파 행동대원 박철민씨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당시 박씨는 현금다발 사진을 SNS 사진에 올렸는데, 이 사진은 박씨의 사업 홍보용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유튜브 등 SNS에는 이미 이 대표의 조폭연루설을 기정사실화하는 취지의 가짜뉴스가 쏟아졌다.

전쟁판 뒤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해외도 마찬가지다.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눈길을 끄는 가짜뉴스가 SNS를 장악했다.

특히 가짜뉴스가 상대방을 비방하고 전황을 교란, 자신들 쪽으로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전쟁판을 뒤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일례로 지난 10월 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에서 폭발 참사가 발생하자 하마스는 이스라엘 소행으로 주장했다.

다수 외신도 하마스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후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분노가 들불처럼 일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자국군의 공습 흔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이슬라믹 지하드 대원들이 로켓 발사 실패와 관련해 대화하는 감청 정보까지 공개했다. 그제야 외신들도 자사 보도의 실수를 인정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앞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다음 날인 지난 10월 8일에는 ‘하마스 군인이 이스라엘 헬리콥터를 격추했다’는 내용으로 한 영상이 엑스에 올라왔다.

해당 영상은 270만명이 조회하고 1만명이 좋아요를 표시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비디오 게임 ‘아르마3’을 연출한 장면이라는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AP통신은 이러한 가짜뉴스를 가리켜 "전 세계인이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라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일상 속 파고든 가짜뉴스…저커버그 패션쇼·교황 롱패딩


광고 수익을 노리고 일명 '클릭 유발'을 위해 생성된 가짜뉴스도 있다.

지난 4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저커버그 메타 CEO(최고경영자)의 패션쇼 장면은 사흘 만에 SNS에서 100만 조회 수를 넘기며 큰 관심을 얻었다.

패션쇼 사진을 보면 저커버그가 분홍색 점퍼와 바지에 신발까지 분홍으로 맞춰 패션쇼 무대에 섰다. 은색 목걸이를 한 채 선글라스까지 멋스럽게 곁들였다. 이보다 앞서 교황이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 풍의 순백 롱패딩을 입고 바티칸시국 성 베드로 광장을 산책하는 모습의 사진도 확산했다. 이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힙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2600만건에 달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두 이미지 모두 AI 미드저니(Midjourney)가 생성해낸 가짜였다. 미드저니 측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료 평가판'을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누리꾼들은 "고도의 마케팅 기법이 의심된다"라며 혀를 찼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경제적 이득을 노리거나 혐오 정서를 선동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나라별로 가짜뉴스의 성향은 다를 수 있지만 어딘가에 편승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거짓'이라는 점에선 동일하다.

"무비판적으로 정보 퍼 나르는 것 멈춰야"


왜곡된 정보 확산 등에 대해 SNS 플랫폼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지난달 엑스와 메타 등에 각각 디지털서비스법을 준수하기 위한 조처를 제출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들 플랫폼은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 및 검색엔진'으로 지정돼 있다 보니 강력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유해·불법 콘텐츠 발견 시 신속히 제거하는 한편 신고 창구 등 예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시정 조처를 하지 않으면 연간 글로벌 수익의 최대 6%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내야 한다.

플랫폼 업체들은 부랴부랴 대책에 나섰다. 엑스 보안팀은 지난달 10일 부적절한 콘텐츠를 퍼뜨린 수백만 개 계정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메타는 같은 달 13일 79만5000건 이상의 전쟁 관련 가짜 뉴스 또는 폭력·선동 문제가 있는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불쾌한 콘텐츠'로 표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업들도 소비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퍼 나르는 것까지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이는 한 조사 결과에서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가 지난 1월 페이스북 사용자 2400여명을 대상으로 가짜뉴스 유통 구조를 조사한 결과, SNS에서 습관적으로 뉴스를 공유하는 사람 중 15%가 전체 가짜 뉴스 유통의 30~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뉴스 소비자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시대에 누구도 가짜뉴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라며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기 전 진위와 출처 확인에 단 몇 초라도 할애한다면 가짜뉴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라고 당부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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