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독점하던 시대 끝나… 대학서 ‘토론형 인재’ 키워내야"

      2023.12.12 18:15   수정 : 2023.12.12 18:19기사원문
"태재대의 수업은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식을 내재화하는 과정입니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이 지난 5일 파이낸셜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태재대의 수업 방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태재대는 사이버대와 일반대가 결합한 4년제 하이브리드 대학으로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교수들의 발언이 최소화된 수업에서는 약 20명의 학생이 토론을 통해 스스로 학습할 기회를 부여받는다. 태재대 학생은 서울에서 학기를 시작해 2학년 2학기부터 도쿄·뉴욕·홍콩·모스크바 4개 도시를 돌며 해외 현장 경험을 쌓는다.
염 총장은 "대학이 지식을 독점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면서 "태재대 수업은 듣는 행위가 아니다.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태재대는 지난 9월 개교해 첫 학기를 운영하고 있다. 내년 3월까지는 두번째 신입생을 모집한다. 염 총장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고려대 총장직을 역임하며 성적 장학금과 입시 논술전형 등을 폐지하는 등 교육 혁신을 이끈 인물로 불린다. 그가 올해 개교한 태재대의 총장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차별화된 교육을 펼칠지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국에 대학은 많다. 태재대가 필요한 이유는.

▲15세기에 금속활자가 만들어지고 지식이 확산되면서 세계 문명이 바뀌지 않았나. 지금 그런 변화가 디지털로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기존에 했던 단순 반복적인 일은 인공지능(AI)이 하게 되고, 인간은 AI보다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대다. 암기 중심의 세분화된 전공을 가르치는 방식은 불필요하다. 태재대는 튜터식으로 개인형 교육을 진행한다. 시대 흐름에 발맞춘 것이다.

─기존 대학교와 얼마나 다른가.

▲20세기 후반 들면서 일반 대학은 대부분 연구 중심으로 바뀌었다. 평가받을 때 학생 교육보다 연구 업적을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이 탓에 강의는 소홀해지고 시대에 뒤처진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태재대는 다르다. 토론형 수업으로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해외에서 현장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 아닌, 자신만의 독창적인 지식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해외 현장 학습에 대해 설명한다면. 특히 러시아도 포함돼 있다.

▲해외 주요 도시로 나가서 그 도시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제안하도록 하는 수업 방식이다. 현재로선 러시아에 가기 어렵지만 2~3년 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근접해있는 주요 강국으로 미래 사회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이 알아야 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다. 만약 러시아에 갈 수 없다면 구러시아권에서 학습하게 될 것이다.

─올해 9월에 첫번째 신입생을 선발하고 3개월이 지났다. 첫 학기는 어땠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학생 중 일부는 영어로 토론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더라. 이러한 학생들에게는 토론 그룹도 만들어주고 영어 개별지도도 해줬다. 그렇게 두달 정도 지나니까 적응하더라.

─구체적인 수업 방식은?

▲학생들이 3~5명씩 한 조를 이룬 뒤 교수에게 주제를 받아 토론·발표를 진행한다. 토론에선 소통 능력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다른 학생과 얼마나 협력하는가가 중요하다.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동기부여 하는 촉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학생들은 스스로 지식을 찾아보고 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더해 토론에 나선다.

─평가는 어떻게?

▲우리는 중간·기말고사 별도로 없다. 교수는 학생들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토론하는지를 평가한다. 학생들은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2~3주에 한번씩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 에세이도 평가 대상이다.

─내년 3월 신입생 모집은?

▲최대 70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이 중 70%는 미래인재 전형으로 뽑는데 자신이 태재대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에 대해 에세이를 내야 한다. 이후 면접은 모집인원의 3배수인 2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면접을 보는 학생은 5분 분량의 자기소개 영상을 제출해야 한다. 면접은 토론면접과 개인면접이 있다. 토론면접은 6명이 15분간 영어 지문을 읽고 60분간 토론하는 방식이다.

─태재대는 9월 학기제로 운영된다. 3월 신입생은 6개월 간의 공백이 생기는데.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9월 학기제로 디자인했다. 3월에 입학한 학생들은 예비학기 코스를 통해 영어와 제2외국어, 에세이 쓰는 법 등을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현 입시제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수능은 말도 안 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줄 세운 다음 오지선다형 문제를 제시하고 두부 자르듯 자르는 게 가장 공평한 평가 방식일까? 그렇지 않다. 공정하다는 건 착각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나뉘고, 고액 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고득점을 받지 않나. 태재대는 그런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회사가 인재를 발굴하듯이 채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입시비리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있지 않나.

▲그것은 사회적인 신뢰의 문제다. 우리가 자격 없는 학생을 뽑으면 장기적으로 학교에 이롭지 않다. 그런 학생을 왜 뽑겠나. 만약 공정성을 위해 지금의 정시 제도가 계속 지속된다면 그것은 합리적일까? 사회적인 신뢰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불확실성도 크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20세기 틀에 갇혀 있는 거 같아 안타깝다.
학부모들은 여전히 명문대와 영어만 중요하게 여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기 생각 없이 명문대 나오고 영어만 잘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21세기는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더 먼 미래를 봐야 한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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