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총소리, 내 고향의 왜성”...‘서울의 봄’ ‘노량’ 감독이 밝힌 창작의 씨앗

      2023.12.14 07:00   수정 : 2023.12.14 10:5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21일째 736만명을 모은 가운데,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노량:죽음의 바다’가 오는 20일 개봉한다.

‘서울의 봄’이 불러일으킨 극장가의 봄이 ‘노량’이 이어받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김성수와 김한민 감독이 두 영화를 각각 만들게 된 계기가 눈길을 끈다.

김성수 감독은 앞서 '서울의 봄'을 영화로 만들게 된 이유로 자신이 고3이었던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이 일어난 그날밤 직접 들었던 실제 총성을 꼽았다.



그는 "당시 한남동에 살았는데 육군참모총장 공관 건너편에 있던 친구집 옥상에서 들었던 총성이 '서울의 봄'을 만들게 된 출발점이다. 그때 열아홉 살이었던 나는 20여분 넘게 간헐적인 총성을 들으며 공포에 사로잡혔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라고 회상했다.


또 “당시에 총성의 이유에 대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려 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이후로 그날에 대한 궁금증을 머릿속에 남겨두게 됐다”라고 회상했다.

그날의 사건에 대해 알게된 후에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는 "30대가 되고 나서야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하룻밤 사이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구나'라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들었다"며 "지금은 총소리를 들었던 그 겨울밤으로부터 44년이 지났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날의 사건이 한국 현대사의 운명적인 전환점이 됐는지, 가슴 속에 있던 오래된 숙제를 영화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제작 계기를 설명했다.


‘노량’의 김한민 감독도 어릴 적 품었던 어떤 감정과 궁금증이 이순신 프로젝트로 연결됐다. 김감독은 “어릴적 고향 순천에 있는 왜성을 보며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순천 왜성은 정유재란(1597) 당시 육전에서 퇴진한 왜군 선봉장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이다. 침략 최정예 부대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1만 4000여명의 왜병이 주둔하며 조·명 수륙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최후·최대의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김감독은 “‘노량’은 왜 만들었느냐, 그분만의 고독한 화두였던 완전한 항복, 끝까지 쫒아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곱씹었다.


“어릴 적에 그 왜성이 이해가 안됐고, 임진왜란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성인 줄 알았다. 시대를 뛰어넘어 (역사가) 반복된다는 데 굉장한 두려움을 느꼈다.
바로 그 두려움이 화두가 되어서 ‘노량’을 만들게 된 씨앗이 된 것 같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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