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재벌 재판으로 심판대에 선 홍콩 사법부
2023.12.19 14:50
수정 : 2023.12.19 14:5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이석우 특파원】 유명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자인 홍콩 부호 지미 라이(76)에 대한 재판으로 홍콩 사법부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BBC 등 외신들이 19일 전했다.
지오다노와 함께 넥스트메거진과 중국에 비판적인 빈과일보(애플데일리) 등을 세운 지미 라이는 구속 상태에서 홍콩 국가안전유지법(국안법) 위반 등에 따른 판결을 받기 위해 18일부터 홍콩 법정에 섰다.
그는 2020년 불법 시위 주동 혐의 등으로 구속된 뒤 1000일 동안 영어의 몸인 상태에서 새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출판물을 통해 외세에 중국 제재를 유도하는 등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3건의 국안법 위반과 선동적인 출판물 발행, 대중의 정부에 대한 증오 조장 등으로 인한 혐의 등으로 판결을 받는다.
홍콩 검찰은 라이가 궁극적으로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빈과일보를 발판으로 ‘홍콩 자유를 위한 투쟁’이란 국제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심리 기간은 80일 가량 이어진다. 국안법은 범죄 행위가 중대할 경우 종신형 또는 금고 10년 이상을 부과한다.
이에 따라, 베이징의 괘씸죄에 걸린 홍콩 민주화의 상징격인 라이를 홍콩 사법 당국이 본보기로 국안법의 중대 위반 혐의로 최소 10년에서 종신형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고 외신들은 본다. 이미 3년 넘게 복역해 온 76세의 라이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영국과 홍콩 법조계에서는 국안법을 실체법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벌이 과하다는 평이다. 베이징 당국의 자의적인 입김이 홍콩의 사법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상징적인 판결이 될 수 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 경우, 국제자유무역 도시이자 아시아 금융 중심을 지탱해 온 법에 의한 지배가 무너지고, 공권력의 자의적인 판단, 정치적 판단이 사법부 위에 군림하게 되는 등 홍콩을 떠받치는 무형의 자산이 허물어지는 상징적인 계기가 될 것이란 걱정이다.
영국 외무부는 앞서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영국은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며 지미 라이와 홍콩인들 편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도 같은 날 라이의 아들인 세바스티안을 만나 “라이 사건을 영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면서 “그에 대한 기소는 대단히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외무성은 이 문제를 왕이 중국 국무위원과도 협의했다고 밝혔다. 라이는 영국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미 국무부도 그의 석방을 촉구했고, 유럽연합(EU) 의회와 캐나다 의회도 라이의 무조건적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그를 ‘반중폭도’라고 부르며 관련 국가들에 내정간섭 중단을 촉구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18일 미·영 등의 비판에 대해 “분명한 정치적 공작이며 단호히 반대한다”라고 맞받아 쳤다.
베이징 당국은 라이와는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강경한 자세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18일 베이징을 찾은 홍콩의 수장 리자차오(존리) 행정장관의 현안 보고를 받은 뒤 “국가의 안전을 확실히 지켰다”, “높게 평가한다”라고 만족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경찰 출신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를 깔끔하게 분쇄한 것 등을 높이 평가 받아 왔다. 라이에 대한 문제도 보고 내용에 포함됐을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정부 입장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중국 관영매체들은 '외국과의 결탁자', '배신자' 등의 표현을 써 가면서 그를 비난하고 있다. 그의 재판을 앞둔 지난주 홍콩 당국은 해외 도피 민주화 운동가 13명에 대해 1인당 최대 100만홍콩달러(약 1억67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거는 등 압박의 도를 높였다.
베이징 당국은 여러 차례 기회를 주었는데에도 시위와 사회 불안을 더 선동하고, 외세와 결탁해왔다고 라이를 공격하고 있다. 시위와 항의 대열의 선봉에 서 왔던 라이에 대해 홍콩의 국안법 발효 전까지는 유화적인 태도로 대해 왔었다.
홍콩 경찰은 그러나 2020년 8월 라이와 두 아들, 신문사 임직원 등을 체포했고, 같은 해 12월 31일 라이를 구속 기소해 수감시켜 왔다. 그 뒤 홍콩 당국은 라이의 홍콩 내 자산을 동결시키면서 2021년 6월 경찰 500명을 동원해 중국 당국이 ‘반중 매체’로 규정한 빈과일보의 사옥을 급습했다. 빈과일보는 그 달 폐간했다.
중국 대륙에서 어린 시절 맨 몸으로 홍콩으로 건너 와 자수성가한 라이는 베이징 당국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퍼부어왔다. 1989년 톈안먼 사건 때에는 시위대에 대한 진압과 계엄을 선포한 리펑 .당시 총리에 대해서 공개적인 인신 공격도 서슴지 않았었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