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걸어 들어갔다가, 1시간 만에 '식물인간'..法 "5억원 배상하라"

      2023.12.20 08:28   수정 : 2023.12.20 15:2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신장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호흡곤란 등으로 인천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식물인간이 된 남성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호흡곤란으로 대학병원 응급실 찾은 신장 환자

20일 법원 등에 따르면 전날 인천지법 민사14부(부장 김지후)는 A씨(43)가 모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이날 재판부는 A씨에게 위자료 등 명목으로 5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학교법인 측에 명령했다.



앞서 A씨는 2019년 4월 아버지와 함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신장이 좋지 않았던 A씨는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10차례 넘게 설사를 하고, 이틀 전부터는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2013년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 A씨는 의료진에게 "신장 치료를 위해 조만간 혈액투석도 시작한다"라고 미리 귀띔까지 했다.

응급구조 중 심정지.. 1시간도 채 안돼 '식물인간' 상태로

당시 응급실에서 확인한 A씨의 체온은 40도였으며, 분당 호흡수는 38회로 정상 수치(12∼20회)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의료진은 A씨의 호흡수가 정상이 아니고, 의식마저 점차 잃어가자 마취 후 기관삽관을 했다. 인공 관을 코나 입으로 집어넣어 기도를 여는 처치법이었다

곧바로 A씨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으나 5분도 지나지 않아 심전도 기계의 그래프가 멈췄다. 심정지 상태였다. 병원 응급구조사가 급히 흉부 압박을 했고, 의료진도 A씨에게 수액을 투여한 뒤 심폐소생술을 했다. 다행히 A씨의 심장 박동은 살아났으나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응급실에 걸어서 들어간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후 그는 스스로 증상을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13억 손해배상 소송 낸 아버지.. 재판부 "인과관계 있다"

A씨의 아버지는 2020년 5월 변호인을 선임한 뒤, 총 13억원을 배상하라며 대학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변호인은 소송 과정에서 "환자가 의식이 있는데도 의료진이 불필요한 기관삽관을 했다. 기관삽관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지 않는 등 경과 관찰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의료진은 신장 기능이 떨어진 A씨 상태를 고려해 일반 환자보다 더 각별하게 주의해 호흡수·맥박·산소포화도 등을 기록하며 신체 변화를 관찰했어야 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의료진은 기관삽관을 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심정지를 확인한 15분 동안 A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
이런 과실과 A씨의 뇌 손상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A씨의 호흡수가 증가하고 의식도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관삽관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병원 의료진이 A씨의 심정지 이후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도 고려했다"라고 덧붙였다.

helpfire@fnnews.com 임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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