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다툼에 흔들리는 트럼프, 출마부터 사면까지 '안갯속'
2023.12.21 05:00
수정 : 2023.12.21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루된 법정 다툼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그가 내년 대선에 출마해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감옥에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출마 자체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당선되더라도 스스로 사면이 가능할지 불분명하다.
출마조차 어려워져
AP통신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미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19일(이하 현지시간) 판결에서 트럼프가 대선 후보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미국 남북전쟁 직후 마련된 수정헌법 14조 3항을 인용해 트럼프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해당 법안은 미 헌법을 지지하기로 맹세했던 공직자가 모반이나 반란에 가담할 경우 다시 공직을 맡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은 남북전쟁 이후 남부 정권에 가담했던 인사들의 공직 임용을 막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대선 후보 자격 박탈에 인용된 것은 이번이 역대 최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가 2021년 1월 6일 발생한 미 워싱턴DC 국회의사당 난동 사태 당일 폭도들을 선동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그에게 내란 가담 혐의를 적용했다. 트럼프 선거 캠프는 이번 판결 직후 즉각 연방 대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트럼프는 콜로라도주에서 출마하지 않아도 대선 운동에 큰 지장이 없다. 콜로라도주는 기본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한 주다. 또한 미 대선은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인 동시에 승자 독식제도를 채택한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당시 콜로라도주에서 일반 유권자들에게 136만표(41.9%)를 얻었지만 조 바이든 미 대통령(55.4%)에 밀려 콜로라도주에 배정된 선거인단(9명)을 모두 빼앗겼다. 애초에 이기지 못하면 출마해도 의미가 없다.
문제는 비슷한 소송이 다른 주에서도 여럿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현재 최소 25개주에서 트럼프의 대선 후보 자격을 따지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앞서 트럼프는 미네소타주와 뉴햄프셔주, 미시간주에서 진행된 비슷한 소송에서 모두 승리했다. 미시간주 대법원은 사법부가 특정 후보의 대선 출마 자격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미 좌파 시민 단체인 '시민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18일 미시간주 대법원 판결에 항소를 제기했으며 오리건주에서도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다. 콜로라도주 소송은 좌파 단체인 '워싱턴의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이 제기했다. 해당 단체는 바이든을 지지하는 기부자들의 자금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미 정치매체 더힐이 15일 전국 단위에서 실시된 497개 여론 조사의 평균을 집계한 결과 바이든의 평균 지지율은 41.8%로 트럼프(43.7%)보다 1.9%p 낮았다.
트럼프 선거 캠프의 스티븐 청 대변인은 "민주당이 임명한 콜로라도 대법원은 트럼프를 반대하는 판결을 하면서 바이든을 대신해 선거에 개입하려는 좌파 단체의 계략을 지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연방 대법원이 신속하게 우리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고, 마침내 이 미국적이지 않은 소송을 끝낼 것이라고 전적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선거 이겨도 잡혀갈 수 있어
현재 91개의 혐의로 4건의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자신만만했다. 미 헌법에 따르면 미국에 14년 이상 거주한 35세 이상 미국 시민은 누구라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받거나, 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 출마가 불가능하지만 미국에서는 옥중에서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자신을 사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9월 14일 인터뷰에서 "내가 뭘 잘못했나?"라며 당선되더라도 스스로 사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연방 검찰로부터 2건의 기소, 주 검찰로부터 2건(뉴욕주·조지아주)의 기소를 당했다. 트럼프는 내년 11월 미 연방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연방 검찰의 기소만 사면할 수 있으며 주 검찰의 기소에 간섭할 수 없다. 현지 매체들은 조지아주의 혐의가 뉴욕주의 혐의보다 심각하다며 실형 가능성을 제기했다. 조지아주에서는 현재 공화당 주지사(브라이언 켐프)가 재임 중이지만 트럼프의 사면은 주지사가 아닌 주정부 차원의 별도 위원회가 판단한다. 게다가 뉴욕 주지사는 민주당(캐시 호컬) 사람이다.
트럼프가 면책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앞서 미 의회 경찰 2명과 민주당 의원 약 10명은 지난 2021년 국회의사당 난동과 관련해 트럼프가 폭도들을 선동했다며 그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의 변호팀은 해당 소송과 관련해 트럼프가 당일 했던 발언은 대통령 재임 당시 공무 성격이라며 면책 특권으로 인해 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1일 판결에서 "초선 대통령이 재선과 관련해 진행하는 선거 운동은 대통령의 공적인 행동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가 사건 당시 공적인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개인 자격으로 행동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통령 면책 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소송을 계속 진행한다고 결정했다. 트럼프 변호팀은 7일 해당 결정에 항고하겠다면서 법원에 재판 진행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둘러싼 사법 위험이 커지다보니 트럼프를 대체할 다른 공화당 후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CBS방송이 17일 공개한 뉴햄프셔주(1054명)와 아이오와주(855명)의 유권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도층이 많은 뉴햄프셔주의 경우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의 인기가 높았다. 당장 오늘 투표하면 누구를 뽑느냐는 질문에 트럼프(44%)가 1위, 헤일리(29%)가 2위를 차지했다. 반면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헤일리가 55%로 1위를 차지했으며 2위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37%)였다. 뉴햄프셔주는 내년에 공화당의 첫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열리는 지역으로 전체 경선 흐름을 예측하는 풍향계로 불린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