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남편'도 이혼 사유가 되나요

      2023.12.30 09:00   수정 : 2023.12.30 11:1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과묵'이란 남성들의 타고난 성향일까, 아니면 한국 남성들에게 오랜기간 요구됐던 덕목이었을까. 필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중년 남성’의 모습은 ‘표정 없는 거뭇한 얼굴, 어두운색의 정장(각이 잘 잡힌 정장이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옷차림은 정장이라는 정도로 몸에 익숙해 보이는)과 구두(번쩍거리는 광이 나는 구두가 아니라 365일 신어도 불편함을 알지 못하겠다는 정도의, 매일 아침 선택의 여지 없는 유일한)’로 정형화되어 있다. 너무 재미없는 모습을 떠올렸나 싶어 다시 한번 떠올려 봐도 키와 몸무게의 변화만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같은 모습이다.

주말엔 낚시 떠나는 건조한 남편
필자는 대부분 아내 쪽 이혼 사건을 수임하는데, 아내 이야기만 듣고 남편의 모습을 상상한다.

오늘 소개하는 사건의 아내는 20대 딸과 함께 상담받으러 왔다. 아내가 이혼을 원하는 이유는 함께 살아도 그만, 함께 살지 않아도 그만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존재감이랄게 없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 저녁에 들어오면 저녁밥, 밤이 되면 잠, 주말에는 낚시와 같은 일정한 삶의 패턴을 가졌다. 패턴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면 그것은 직계혈족 경조사나 본인 건강검진 정도였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해도 큰 반응이 없었고, 감정 섞인 말에도 휘둘리지 않았다. 필자가 상상한 남편의 모습은 위에서 말했던 ‘중년 남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정지 화면에 가까운 미동 없는 표정과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꾸준한 일상에 재미없고 실없는 농담.

듬직한 모습이 결혼후 '지루함'으로 변해
아내는 남자답고 듬직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결혼하였는데, 결혼 후의 남편에게서 찾을 수 있는 매력은 매달 정직하게 주는 생활비일 뿐, 부부관계나 대화는 너무나 지루했다. 아내는 친구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자녀는 딸 하나, 아들 하나였는데, 딸은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항상 아빠에 대한 불평불만을 얘기하면서 딸에게 공감을 구하다 보니, 딸도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 수밖에 없고, 점점 아빠와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딸은 어렸을 때 아빠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남은 사건도 있었는데,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10세인 딸이 또래 사촌들과 놀다가 싸우자, 아빠가 와서 딸의 등을 세게 때리면서 ‘너가 잘못했으니까 사과해라’라고 하였고, 그때의 창피함과 서운함이 엄마의 불평불만과 더해져서 남과 같은 사이가 되었다.

친구와의 만남, 여행이 아내 일상 돼
아내의 의뢰로 이혼소송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고 부부상담으로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대화가 적은 것은 맞지만 다른 부부들처럼 ‘지지고 볶고’할 만한 사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이혼 의사가 확고했다. 이미 아내는 부부관계를 대신할 만한 것들로 일상을 가득 채웠고, 그 일상은 재미없는 부부관계와는 달리 매우 활력이 넘쳤다. 딸을 비롯한 친구들과의 만남, 여행, 미용, 부업 등, 아내의 일상에 남편은 이미 없는 상태였다.

반면, 남편은 점점 외로웠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으니 여자를 잘 몰랐고,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그게 전부였던, 더 옛날의 남편상 외에, 변해가는 시대에서는 어떤 남편, 어떤 아빠여야 하는지, 시대는 묻기만 할 뿐이고, 남편은 그 물음 속에서 25년을 헤맸다. 집안일은 밖에 나가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익히 들어온 옛말과 같은 원칙 속에 누구에게도 아내나 딸과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내 마음을 알아보려는 사람이 없다. ‘집안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처절하다.

서럽게 울어버린 남편, 이혼은 막지 못해
조정기일에 아내와 대화를 하고 싶다는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뿐, 자신의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해 본 적 없는 자신의 속마음을 한 번에 잘 설명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결국 아내의 완강한 이혼 의사에 남편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고 이혼은 조정으로 성립되었다.

필자에게 중년 남성의 이미지는 막연히 ‘고독’이었는데, 실제로 이혼소송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중년 남성들은 고독하고 외롭다. 재미없고 실없는 농담에도 웃어주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쉽게 열고, 쉽게 빠진다. 집에서 외로웠기 때문에 바람을 피웠다는 변명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합리화될 수 없는 변명이고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럼 차라리 남자가 수다스러우면 더 나을까.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잘 얘기하고, 대화 상대방으로부터 공감을 받으면서 외로움을 다스릴 수 있는 남자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가벼워 보이는 남자라 결혼 상대로는 별로라고 했겠지.

[필자 소개]
박주현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법무법인 중용의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형사 및 이혼 전문 변호사로서, ‘내변호사 박변호사’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는 공익성을 가진 특수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의뢰인에 대한 최선의 법률서비스와 변호사로서의 공익적 사명감이 조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은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박주현 변호사의 신념이라고 한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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